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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인생은 속도 아닌 방향

5년 전 탈북 청소년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세 명의 중학교 2학년 소녀들이었다. 한 명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배우”라고 말했다.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일 정도로 수줍음을 타는 아이라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 옆에 아이는 “가수를 하고 싶은데 노래가 안 되니 백댄서를 할까 한다”고 답했다. 그 옆 아이는 꿈이 코디라고 했다. 죄다 연예계 관련 직종이네. 배우가 꿈인 아이가 말했다.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거의 다 그래요. 연예계 일 하고 싶어 해요.” 왜? 가수 또는 백댄서가 꿈인 아이가 말했다. “보는 직업이 그것뿐이잖아요. TV에서. 부모님들도 남한 직업은 잘 모르시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북한에서 온 청소년에게 직업교육이 절실하구나 생각했다. 죽 한국에서 커온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몰랐다. 졸업을 앞둔 여대생 A양을 만나기 전까지는. A는 소위 ‘스펙’이 끝내준다. 명문 사립대를 나왔다. 학점은 3점대 후반, 중국어가 수준급임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있고 토익 점수도 900점을 훌쩍 넘는다. 그런 A는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대신 한 공공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막연히 떠오르는 직업이 몇 가지 있긴 한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섣불리 결정하면 후회할 것 같아 당분간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하는 직업을 찾겠다고 했다. A는 차라리 솔직하고 진지한 편이다. 그의 주변에는 “일단 걸리고 보자”는 심정으로 묻지마 지원을 하는 취업 준비생이 대부분이다. 역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 친구들이다. “어떤 산업인지, 어떤 직무인지 안 가리고 넣는 경우도 많아요. 몇 백 장씩 쓰는 거죠.”

직업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증명하는 기사를 최근 읽었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중학생들에게 “무슨 공무원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그냥 공무원’이라고 답하더란다. 교사를 희망한 아이들은 ‘역사 교사’ ‘체육 교사’ 하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답했다. 선생님이야 늘 학교에서 보지만 공무원은 본 적도 없다. 다들 공무원 좋다니까 공무원이 되기로 했는데,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지 머릿속엔 전혀 그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중앙일보 2월 5일자 열려라공부 1, 3면>

직업을 찾는 일은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는 작업이다. 막연하게나마 내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고 나면, 어떤 식으로 자기를 발전시켜야 할지 답도 나올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괴테의 명언을 요즘 SNS에서 자주 만난다. 인생의 방향은 평생 고민할 숙제이긴 하다. 분명한 건 스펙을 쌓기 전에 그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이라도 진지한 고민에 들어간 A에게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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