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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죽기 전 가족이 보낸 암호문 '암살자 조심하라'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CIA) 본부 뒤뜰의 구리조각품 ‘크립토스(Kryptos)’를 배경으로 암호의 이미지를 그래픽화했다. 위 암호문을 해독해 보세요 … 정답은 기사 하단에 있습니다.


“너 수학 문제 좋아하지? 이거 한번 풀어봐.”

숨기고, 뚫고 … 2500년 역사 암호의 세계



 지난해 8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이모(32)씨는 군산교도소의 강모(28)씨에게 이런 내용의 영어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 있던 수학 문제는 20.8.5+16.9.7.19-6.15.21.14.4-19.8.9.20… 형태로 59개의 숫자가 더하기·빼기 등 연산 기호와 함께 적혀 있었다. 하지만 숫자를 알파벳으로 바꾸니 ‘경찰이 집에서 마약을 발견했다. 검사가 너를 소환하면 나는 대마만 하고 마약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라’라는 내용의 문장이 됐다. 서울지방검찰청 백용하 공판2부장은 “‘a는 1, b는 2’처럼 알파벳에 숫자를 차례로 대입한 초보적인 수준의 암호였다”며 “두 사람이 미국 유학생 출신이다 보니 암호를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즐겨 쓰이는 소재다. 미국 드라마 ‘넘버스’에는 연방수사국(FBI) 특별수사관 돈 엡스와 천재 수학자 찰리 엡스 형제가 암호를 풀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가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비밀리에 투입되는 사실 같은 망상이 그려졌다. 영화 ‘조디악’은 암호 편지를 언론사에 보내는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로 역시 실화가 배경이다. 암호를 소재로 한 조각품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 뒤편에 있는 대형 구리조각품 ‘크립토스’는 4개의 휘어진 구리판에 860여 개의 알파벳 암호가 숨어 있다. 1990년 설치된 이후 전 세계 암호전문가들이 해독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다.



암호란 어떤 내용을 남모르게 전달하기 위한 부호나 문자를 가리킨다. 영어로는 코드(code), 패스워드(password), 사이퍼(cipher). 역사적으로 암호는 범죄와 관련된 어두운 이미지였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암호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최근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엔 전 금융권이 고객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암호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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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에 암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약 2500년 전 스파르타 시대다. 스파르타는 전쟁 중 군대에 왕의 명령을 전할 때 ‘스키테일’이라고 불리는 원통형 막대와 두루마리 양피지를 이용해 암호문를 만들어 보냈다. 가느다란 양피지 리본을 이 원통에 위에서 아래로 감고 그 위에 옆으로 글을 쓴다. 세로로 감아 가로로 글을 썼으니 글자의 행렬이 뒤죽박죽이 돼서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된다. 하지만 암호문을 받은 사람이 같은 모양의 원통 막대에 같은 방식으로 리본을 감아 옆으로 읽으면 해독할 수 있다.



 로마의 유명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BC 44) 이름을 딴 암호도 있다. 정적들로부터 암살 위기에 처한 카이사르에게 가족들이 암호문을 보내는데 그가 사용했을 라틴어 암호를 요즘 영어식으로 풀어본 내용은 ‘EH FDUHIXO IRU DVVDVVLQDWRU’였다. 이 암호문의 뜻은 ‘BE CAREFUL FOR ASSASSINATOR(암살자를 조심하라)’. A는 D로, B는 E로 각각의 알파벳을 3개씩 밀려 쓴 것이다. 이처럼 원래의 알파벳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시켜 만든 것이 카이사르 암호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지동설의 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도 암호문을 썼다. ‘THE EARTH IS TURNING’을 ‘AEEGHHINNRRSTTTU’로 바꾸는 것처럼 특별한 규칙 없이 정해진 문장 안의 알파벳을 뒤죽박죽으로 뒤섞는 ‘애너그램’이라는 암호였다. 이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말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쓰였다. 『정보보호개론-정보보호를 위한 암호의 세계』를 쓴 송은지 남서울대 교수는 “연구 성과를 자유롭게 공표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당시 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애너그램으로 만들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후에 같은 연구 성과를 다른 누군가 내놓으면 자신이 갖고 있던 애너그램을 풀어서 그 내용의 최초 발견자는 자신임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1586년 프랑스 외교관 비즈네르는 카이사르 암호의 단점을 개선한 새 암호체계를 선보였다. 카이사르 암호는 하나의 알파벳이 다른 하나의 알파벳으로 일정하게 대응된다. 따라서 어떤 글자가 가장 많이 쓰였느냐만 따져도 해독이 가능하다. 알파벳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는 E, T, A다. 의미 없는 알파벳의 나열인 것처럼 보여도 가장 많이 나온 글자가 E나 T, 또는 A에 해당한다는 걸 알면 암호문을 해독할 수 있다. 비즈네르 암호는 하나의 알파벳에 두 개 이상의 알파벳을 대응시켜서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 또 1786년 미국 제퍼슨 대통령은 각 단어에 해당하는 숫자의 조합을 정하고 이 내용을 적은 ‘코드북’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암호가 획기적으로 발전한 계기는 제1, 2차 세계대전이었다. 암호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1차 대전에서 영국은 암호전담반을 설치하고 독일의 무선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을 했다. 이들이 해독한 암호문 가운데는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인 에카트르에게 보낸 것도 있었다. ‘멕시코가 미국과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은 멕시코와 싸우느라 독일에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가 미국을 맡아주면 독일은 멕시코가 텍사스와 뉴멕시코 등을 회복하는 걸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이 이 암호문을 미국에 전달한 후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전쟁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2차 대전 승리의 배경에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있었다. 당시 독일은 ‘악마의 기계’라고 불리던 암호 통신기기 ‘에니그마’로 연합군을 괴롭혔다. 26개 알파벳 자판을 6가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기기였는데 이를 활용하면 22자리 이상의 천문학적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튜링이 만든 것이 바로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다. 1943년 제작된 콜로서스는 간단한 산술 연산을 할 수 있는 기계로 1초에 5000자의 암호문을 종이테이프에 입력해 에니그마의 암호와 일치할 때까지 비교했다. 흔히 45년 제작된 미국의 ‘에니악’을 최초의 컴퓨터로 알고 있지만 이는 영국 정부가 콜로서스의 존재를 70년대 후반까지 비밀로 했기 때문이었다. 튜링의 콜로서스 발명 이후 연합군은 독일의 암호문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튜링은 후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여성 호르몬 투여를 통한 실험적 치료를 명령받는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중추 신경계통이 손상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던 튜링은 54년 백설공주처럼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암호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윤은준 경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에 따르면 고양이 사진이나 음악·동영상 파일에 메시지를 넣어 보내는 스테파노그래피라는 암호화 기법은 9·11테러 당시 빈 라덴이 조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됐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도 해외에 있는 조직원들과 이 방식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마약 범죄조직 실크로드는 ‘토르’라는 암호 기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온라인 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돈거래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도 암호는 자리 잡고 있다. 신용카드나 출퇴근 시 사용하는 교통카드, 스마트폰의 유심칩엔 나의 정보가 암호화돼 저장돼 있다. 인터넷 뱅킹에 사용하는 공인인증서나 일회용 번호를 생성시키는 OTP(One Time Password) 등에도 암호가 활용된다. 음원 무단 복제를 막기 위한 기술인 DRM은 대상 파일을 통째로 암호화하는 방식이다.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70년대 이후 암호의 용도가 군사·외교를 넘어 금융·상업으로 확장됐다”며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암호를 해독하는 능력도 높아지고 있으며,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암호를 만드는 함수나 연산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카드 정보 유출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보 암호화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은행·증권·보험사 등 3000여 개 금융회사 중 주민등록번호를 암호화한 곳은 47곳에 불과했다. 오용석 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안전정책팀장은 “정보가 유출됐다고 해도 일단 정보가 암호화돼 있으면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사이트나 삼성·LG전자 등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도 사용자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암호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애플 아이폰의 경우 사용자 정보 암호화가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비해 잘돼 있어서 단말기를 잃어버려도 정보 유출 위험이 낮다. 각 포털사이트들은 e메일 암호화 강도를 높여서 개인정보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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