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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지 않은 날은 살지 않은 것과 같은 공친 날이다

정민 교수의 연구실은 한양대 서울캠퍼스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인문관 4층에 있다. 아침마다 이곳에 올라 차 한 잔 앞에 놓고 벽면을 빼곡 채운 책과 마주하면 옛사람의 맑고 그윽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했다. 그 고전의 세계로 떠나면서 그는 어제도, 내일도 잊고 오롯이 오늘에 전력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람이 오늘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의 도리가 잘못되게 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는 바가 있으려면 다만 오늘에 달렸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만6000날이 잇달아 온다고 해도 그날에는 각각 그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 실로 이튿날에 미칠 만한 여력이 없다.

내 마음의 명문장 ⑥ 한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



참 이상하다. 저 한가로움이라는 말은 경전에 실려 있지 않고 성인께서 말씀하지도 않았건만 이를 핑계 대고 날을 허비하는 자들이 있다. (…) 공부는 오직 오늘에 달린 것이어서 내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 공부하지 않은 날은 살지 않은 것과 한 가지니 공친 날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한 이날을 공친 날로 만들지 말고 오늘로 만들어야 한다.



- 이용휴(李用休)의 ‘당일헌기(當日軒記)’ 중에서



눈앞의 오늘이 중요하다. 가버린 어제에 집착해 오늘을 탕진하고, 오지 않은 내일을 꿈꾸느라 오늘을 흘려보낸다. 하루는 긴데 1년은 잠깐이다. 하루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고금이 되는 이치를 자주 잊고 산다.



 이덕무(李德懋)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고금(古今)은 큰 순식간이요, 하나의 순식간은 작은 고금이다. 순식간이 쌓여서 어느새 고금이 된다. 또 어제와 오늘, 내일이 만 번 억 번 갈마들어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니 이 가운데 나서 이 속에서 죽는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사흘을 염두에 둔다.”



 홍양호(洪良浩)는 『계고당기(稽古堂記)』에서 말한다. “옛날은 당시의 지금이고, 지금은 후세의 옛날이다. 옛날이 옛날인 것은 연대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만약 옛것만 귀하다 하면서 지금을 우습게 보는 것은 도리를 아는 말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인 순식간이 역사가 된다. 고금은 현재가 포개져서 이루어진 시간이다. 옛날과 지금과 미래는 맞물려 돌아간다. 옛것이 귀한 것은 그때의 지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면 후세는 그것을 간직할 만한 옛날이라 부를 것이다. 세 분이 모두 같은 말을 다르게 했다.



 지난 연말 새 책 『우리 한시 삼백수』(김영사)를 펴냈다. 12년 전 날마다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한시 한 수씩을 읽었다. 평소 책을 보다가 마음에 와 닿는 시를 표시해 두고 하나하나 감상했다. 시기를 따지지 않고 좋은 시만 가려 뽑았다. 홈페이지에 그 감상을 날마다 하나씩 올렸다. 파일 하나를 따로 만들어 매일 읽은 시를 작가 연대순으로 차곡차곡 모았다.



 먼저 7언절구를 읽었다. 1년 반쯤 지나자 300수가량의 한시가 연대순으로 모였다. 주욱 읽으니 놀랍게도 우리 한시사의 흐름이 주마등처럼 한눈에 지나갔다. 시대의 표정이 또렷했다. 5언절구로 또 1년 반쯤 읽었다. 300수를 더 모았다. 잊어버리고 모으자 큰 산이 되었다.



 그간 이런 방식의 작업을 참 많이 했다. 『다산어록청상』 『성대중처세어록』 『죽비소리』 『한밤중에 잠 깨어』 『오직 독서뿐』 같은 책들은 이면지를 절반 잘라 원문을 오려 붙여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전철에서 주로 해석을 쓰고 평설을 달았다. 집에서는 소파에 앉아 쉴 때나 화장실에 앉아서도 썼다. 해석과 평설이 끝난 종이는 따로 갈무리해두고 새 종이를 그만큼 채워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되어 있곤 했다.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은 2006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매주 한 꼭지씩 작정을 하고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모았다. 『삶을 바꾼 만남』은 문학동네 카페에 1년 가까이 연재한 글 모음이다. 지난해에도 한 해 동안 『18세기 한중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을 매주 연재했다. 한 번 쓸 때마다 50~60장 분량이어서 만만치 않았지만, 작은 것이 모여 큰 산을 이룬다던 선인의 가르침을 믿고 밀고 나갔다.



 2012년 8월부터 2013년 7월까지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1년간 머물 기회를 얻었다. 그곳 도서관에서 뜻밖에 경성제대 교수이자 추사 연구자였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의 컬렉션을 뭉텅이로 찾아내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다 미뤄두고 이 자료 정리에 온전히 몰두했다. 생각하는 자료를 모두 갖춘 꿈의 도서관에서 어느 줄기를 당겨도 고구마가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워낙 많은 책을 뒤져 동시에 찾다 보니 일주일만 지나도 전생의 일인 듯 아마득했다. 날마다 내가 읽은 책과 공부한 내용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에 적어 나갔다. 비슷비슷한 하루하루가 날마다 다른 하루로 변했다. 돌아오는 날까지 만 1년간 쓴 일기가 200자 원고지로 3200장에 달했다. 그날그날 찾아 읽은 자료와 그것을 볼 때의 느낌과 새롭게 얻은 정보들이 그 속에 빼곡했다. 하루는 늘 막막하게 시작됐다가 충일하게 마무리됐다. 육신은 지쳐도 정신은 또랑또랑했다. 늦은 밤 연구소의 마지막 불을 끄고 돌아올 때마다 가득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용휴는 ‘당일헌기(當日軒記)’에서 다만 눈앞의 오늘이 있을 뿐 어제나 내일에 눈 돌릴 여가는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늘 공부하지 않으면 하루를 헛 산 것이라 공일(空日)이라고 썼다. 이덕무는 오늘이 쌓여 고금이 될 뿐이니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로 밀려나는 이 사흘의 누적 속에 인생과 고금이 놓여 있다고 단언했다. 나는 오늘의 힘을 믿는다. 이 순간의 중요성을 신뢰한다. 지금 성실하지 않고 오늘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어제만 돌아보거나 내일을 꿈꾸지 않기를 늘 다짐하곤 한다.



 정약용이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말했다.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시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 바둑과 공 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조금 놀아볼까 하다가도 이런 말씀과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삶의 자세를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민=1960년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일한다. 한국18세기학회장과 젊은 한학자들의 모임인 문헌과해석 대표를 지냈다.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한다. 한문학 연구에서 문화사 전반으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 『한시미학산책』『미쳐야 미친다』『다산선생지식경영법』『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삶을 바꾼 만남』『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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