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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구경꾼 된 북한

1964년 2월 겨울올림픽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3000m 경기가 열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올림피아 아이스슈넬라우프반 경기장.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자 선수가 출발선에 들어섰다. 북한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한필화(당시 22세)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름 없는 선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출발 총성이 울리자 관중석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역주(力走) 끝에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한필화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인 최초의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 메달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 겨울올림픽 메달이었다.



출전권 못 따 12년 만에 불참
겨울에도 운동장 물 뿌려 훈련

 반세기가 지난 지금 북한의 사정은 초라하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 북한은 한 명의 선수도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북한이 겨울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겨울 종목 부진의 원인에 대해 탈북 체육인들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인 황보영(35)씨는 12살 때 함경북도 김책제철체육단 빙상호케이(아이스하키의 북한말) 선수로 발탁됐다. 황씨는 “겨울마다 운동장에 물을 뿌려 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위에 펜스를 치고 연습했다. 여름에는 거의 연습도 하지 못했다”고 북한의 열악한 훈련 사정을 설명했다.



 북한 육상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전 빙상 선수로도 활동했던 박세영(37·여)씨는 “북한이 만든 천리마 스케이트는 질이 나빴다. 당시 선수용으로 소련에서 들여온 ‘레닌그라드’ 스케이트가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웬만한 차 한 대 값이라 엄두도 못 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당 간부 자제가 우선 선발되는 등 실력이 아닌 출신성분이 대표선수 선발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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