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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아버지와 서먹해 고민하는 50대 남성

Q 81세 아버지를 둔 51세 남성 직장인입니다. 부친은 특별한 질환은 없지만 노환으로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살아 계실 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한번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학교 이후 지금까지 용건이 있을 때 말고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 성격이 이상한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그 또래의 전형적인 아버지에 가깝습니다. 늙어가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 스스로 불효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우울합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크게 후회할 것 같은데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하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색한 우리 부자, 사랑할 수 있을까요

A 가족 간 갈등을 다루는 TV 토크쇼가 인기입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고부 갈등이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성의 사랑과 미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실생활에서의 중요도 면에선 부부 관계가 고부 관계보다 더 중요할 것 같지만 시청률에서는 밀립니다. 각각 남성과 여성인 부부 사이에선 맛깔스러운 대화가 오가지 못하기 때문인듯 싶습니다. 주로 아내가 불만을 말하면 남편은 어설프게 변명하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시청률이 나옵니다.



 TV에서 다룰 때 가장 답답한 설정은 두 남자, 즉 부자(父子) 관계입니다. 잘 다루지도 않지만 가끔 다룰 때도 보통 토크쇼가 아니라 리얼리티 관찰 쇼 형식을 취합니다. 최근 한 프로그램을 보니 부자 4쌍을 카메라가 설치된 찜질방에 각각 두고, 정작 토크는 이들 부자가 아니라 패널들이 하더군요. 패널이 없었으면 아마 시청자는 TV가 고장 난 줄 알았을 겁니다. 부자 네쌍 모두 말이 없으니까요. 아버지가 어쩌다 “계란 먹을래”라고 물으면 아들이 “네”라고 답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리고는 침묵입니다.



 고부나 부부 간 갈등에선 서로 섭섭한 이유가 대부분 명확한데 부자 사이에선 어색함이 고민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와 친해져서 자주 대화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며 아버지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남자 대학생도 많습니다. 아버지도 비슷합니다.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별일 없니” 정도의 말을 하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아들이 먼저 좀 살갑게 대해주면 좋을 텐데 거리를 두는 것 같아 섭섭하다는 호소도 합니다.



 사연 주신 분, 효자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아마 사랑한다고 그냥 이야기 해버리면 되지 뭐가 어렵냐고 답답해하는 여성 독자가 많을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왜 서로 사랑하면서도 표현은 잘 못하는 걸까요. 무의식에 어떤 심리적 벽이라도 존재하는 걸까요.



 남자에게 있어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연애의 경쟁자, 즉 연적(戀敵)만한 미움의 대상은 없습니다. 인간 무의식의 탐험가인 프로이트는 남자의 첫 연적이 아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라는 여성을 두고 아버지와 삼각 관계를 형성한다는 겁니다. 5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벌써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거죠.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입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비극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테베의 왕이 된 후 이오카스테와 결혼합니다. 뒤늦게 모자 관계라는 사실을 안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멀게 합니다.



 심리 발달 측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엄마를 놓고 아빠와 경쟁하려다 보니 엄마와 아빠는 이미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거기다 아빠가 나보다 힘도 훨씬 세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러면서 자신이 철이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 일어나는 현상이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와 자기 통제의 근간이 되는 초자아(超自我)의 형성입니다.



 아버지와의 경쟁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닮아 씩씩한 남자가 되고자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원해도 하면 안될 일이 있다는 걸 깨달으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동일시는 존경, 초자아는 두려움인 셈입니다. 남자 모두가 5살 이전에 부모와 삼각 관계를 겪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성(異性)인 어머니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랑의 존재라면 동성(同性)인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라니, 멋질 것 같지만 실은 외로워지기 쉽습니다. 최근 60세 이후 노년기 자살률을 보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 이상 높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많아도 마음 속에서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라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가 들려온다면 극단적인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자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대상, 그리고 그 대상과의 관계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사랑받고 싶다고 말을 못할 뿐이지, 사랑에는 더 굶주려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무뚝뚝하다고 마음까지 건조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전투력으로 무장하며 살아온 남자일수록 나이 들어 사랑에 대한 갈증이 더 큽니다.



 아들을 둔 모든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준비에 꼭 포함해야 할 것이 살가운 부자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바빠서 얼굴 보기도 어려운 아들보다 평범하지만 나 힘들 때마다 찾아와 막걸리라도 같이 하며 인생 얘기를 나누는 아들이 더 효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노년의 슬픔은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거꾸로 성장한 아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삶의 멘토로 여기고 고민을 털어 놓으면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으려면 아버지가 그동안 쌓았던 존경과 두려움의 이미지를 조금은 내려 놓아야 합니다. 아들을 내 수준으로 올리려하면 가까워지는 게 불가능합니다. 내가 아들 수준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잔소리가 막 튀어 나오려고 해도 꾹 참고 들어 주고 공감해 주는 겁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기에 칭찬의 효과가 더 큽니다. 아버지의 격려와 칭찬에 아들을 기분 좋게 중독시켜놔야 합니다. 그래야 나이 들어서도 아버지를 찾습니다.



 연세 있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인생 고민을 털어 놓고 상의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무뚝뚝한 부자 관계였는데 갑자기 아들이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오히려 ‘진짜 늙었구나, 이제 갈 때가 됐나 보다’ 라고 슬프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선 부모님에게 좋은 이야기만 하고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게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할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남녀간의 연애에서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관계가 무르익어야 “사랑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 부자 관계도 사랑이란 말을 하기 전에 촉촉한 만남이 필요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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