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남편보다 애를 갖고 싶었어요" 당당한 3040 '미스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5일 서울 관악구의 한 공원에서 아이들과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최형숙(43·왼쪽)씨와 김선영(34·오른쪽)씨. 미혼모임을 주변에 당당하게 밝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39세. 두 달 사귀던 남자와 아이를 가졌다. 2010년 10월 가을이었다. “만나자. 할 얘기가 있다.” 그 후 그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에게 아이는 철부지 10대의 불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백화점에서 일하던 건실한 직장인이었다.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임신 이후 그는 스스로 혼자가 됐다. 자취방에서 열 달을 버텼다.

“남편보다 애를 갖고 싶었어요. 엄마를 포함해 누구에게라도 연락하면 병원에서 애를 지우자고 할 것 같아 두려웠죠.”

이른바 30대 골드미스였던 정진희(43·가명)씨는 이듬해 뽀얀 피부의 아들을 낳았다. 임신 이후 직장은 그만 뒀지만 벌어 놓은 돈으로 아이와 오붓한 생활은 가능하다. 주말에는 야외로 같이 놀러갈 미혼모나 미혼부 가족을 인터넷으로 모으기도 한다.

김은희(41·가명)씨는 9년 전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았다.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입사한 회사에서 동료였던 아이 아빠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사이 마음이 돌아섰다. 낙태를 종용하기도 했다. 김씨는 아이를 선택했다. 아이 아빠는 퇴사했지만, 김씨는 임신 8개월까지 꿋꿋하게 회사를 다녔다. 출산 후에 회사에 복귀도 했다. 회사로부터 사직을 권고받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임신 3개월 째 들어섰을 때 어머니가 아이를 낳겠다는 제 입장을 지지해주셨어요.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어머니가 돌봐주셨기 때문에 직장도 다닐 수 있었죠."

혼외자녀 1만 명 시대. 지난해 통계청이 집계한 2012년 혼외 출생 등록자가 사상 처음 1만 명을 넘었다. 혼외자란 혼인하지 않은 상태인 미혼모나 미혼부의 아이를 말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혼외자 수는 2000년 5540명에서 2012년 1만14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남편보다 아이'를 선택하는 30대 이상 여성들의 자발적 혼외자 출산이 늘어난 게 한 가지 이유다. 국회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실이 2010~2012년 전국 혼외 출생 등록자 자료를 입수해 연령별·지역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 3년 간 혼외자 출생 등록을 한 부모는 모두 2만9742명, 이 중 30세 이상 미혼모는 1만6347명으로 54.9%였다. 10~20대 미혼모(41.5%)의 비중을 넘어섰다. 10년 전(2000~2002년)엔 20대 이하 45.5%, 30대 이상 45.4%로 20대 이하 미혼모가 더 많았다.

지역별로는 제주도 제주시가 혼외 출생자 수 625명으로 1위였다. 이어 광주광역시 북구, 인천광역시 남동구, 경기도 시흥시 순이었다.

인구 적은 제주가 미혼모 수는 가장 많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30대 이상 미혼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미혼모 시설을 운영하는 임애덕 복지법인 청수 대표는 "기간제 교사, 사진작가 등 전문직 30대 여성도 많다"며 "이들은 우성 인자를 가진 남성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계획적으로 임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시에서 한부모 가정이 가장 많은 곳은 강서구 등촌3동이다. 이곳 주민센터에는 지난해 각각 17, 19, 26, 27, 29세와 30세 두 명, 31, 39세 등 미혼모 9명이 출생신고를 했다. 주민센터 김재중 복지지원팀장은 “미혼모 하면 10대 철부지 학생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제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미혼모가 된 이들은 "‘싱글맘’은 ‘싱글’과 ‘맘’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이점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김선영(34)씨는 다섯살 아들을 둔 미혼모다. 아이 아빠와는 모 카드회사 상담원으로 일하던 29세때 만났다. 임신 소식을 전한 후 그 남자는 거짓말이 늘더니 결국 연락을 끊었다. 김씨는 전에는 경쟁 속에서 눈치만 보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아이와 유대감을 느끼며 성숙해졌다고 느낀다. "요즘엔 아이가 '엄마 힘들지'하며 저를 격려해줘요. 제가 오히려 아이에게 의지하게 되더라구요."

스스로를 '미스맘'이라고 부르는 최형숙(43)씨는 “명절에 시댁 눈치 보지 않고 근교에서 커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건 싱글맘의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결혼하면 포기할 것이 많은 대한민국 여성으로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도 했다. 최씨는 남자친구와 '아메리카노를 먹을지, 핫초코를 먹을지' 같은 사소한 말다툼 끝에 헤어졌다. 헤어진지 한 달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헤어디자이너였던 그는 자신의 경제력으로 아이를 충분히 혼자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이제 엄마가 다치면 약을 발라주고 무거운 물건이 있으면 들어주는 든든한 동반자다. “아이는 저와 같이 크는 존재에요. 내가 어른이라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들과 동등한 존재로 같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생활고나 주위의 시선을 견디는 것도 어렵지만 가장 힘든 건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다. 김씨는 "남편이 없어서 아쉬운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아이가 아빠를 찾아 밤새 울 때면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혼외자는 새삼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미 2000년부터 혼외 출산 비율이 50%를 웃돌았다. 청교도가 세운 나라 미국에서도 혼외자 출생은 급증하는 추세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P)는 2012년 미국의 혼외자 출생 비율을 22%로 집계했다. 5명 중 1명의 신생아가 혼외자로 출생하는 셈이다. 2002년 이 비율은 12%였다. 미 ABC 방송은 “임신 가능 연령의 막바지에 다다른 30대 여성이 혼외 출산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한국에선 이 비중이 아직 2%에 불과하다. 29세에 미혼모가 된 김효미(33)씨. 경기 안양의 한 주민센터에 들러 출생신고를 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출생신고서에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기입하지 않자 주민센터 직원은 큰 소리로 “아빠는요?”라고 물었다. 주민센터 직원들과 찾아온 민원인들의 눈이 모두 김씨에게 향했다. 말문이 막힌 김씨가 잠시 숨을 고른후 “아빠는 없는데요…”라고 답했다. 직원은 “그러면 등록이 안될 것 같은데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직원이 상담실로 따로 불러서 서류를 작성했는데, 의자에 앉히지도 않고…. 꼭 취조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정부 기관이 진행하는 행정 절차에서 미혼모는 세상에 없는 존재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직장을 다니다 2년 전 홀로 아들을 출산한 이모(31)씨. 그는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면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학업을 이어가려 했다. 미혼모가 살기 좋다는 프랑스로 가서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꿈을 위해서다. 그는 한부모 가족에 해당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한국장학재단 장학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상담원은 “미혼이면서 한부모 가족으로 표기할 수 없다. 그냥 이혼으로 표기하라”고 권유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아이 아빠가 왜 없어요’라고 되묻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고 한다.

5년 마다 이뤄지는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도 미혼모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혼인 상태를 표기하는 곳에 ‘미혼’을 표기하면 자녀 계획을 입력하는 란을 건너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안내 문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국가 기관에서도 미혼모를 위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10대 미혼부모와는 용어를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형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백과사전에 ‘미혼모’라는 단어를 치면 ‘보통 미성년자를 말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성 가치관의 타락과 성개방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은 “이미 미혼모는 임신 가능한 전 연령대에 나오고 있다”며 “미성년자의 출산과는 개념 정립부터 대책까지 달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혼가정과 미혼·비혼 가정을 단순히 '정상'과 '비정상'으로 재단하려는 사회의 낡은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1년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기혼가정에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만으로 초저출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동거와 혼외출산 등 개방적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는 미혼모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사회 불평등을 줄이고 출산율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으로 꼽았다. 최 교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가부장적 가족 관계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사회 문제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매체에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2006년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는 혈연으로 이뤄진 일반적 가족 관계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나온다. 2011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는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습이 당당하게 그려졌다. 미혼모는 아이의 생부를 떠나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최근 개봉한 장편 다큐멘타리 '마이 플레이스'는 비혼모를 선언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 캐나다 유학생의 이야기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기대 수명이 늘어 부부가 평생을 같이 하기 어렵고 기술 발달로 성과 출산으로 인한 인간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황은숙 한부모가정사랑회장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나고 있는 만큼 기혼가정 중심으로 돼 있는 현재의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