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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중근, 잔인성 박물관, 일본구원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인류 공동체 전체가 세계전쟁에 빠져들어 지구 위 삶들을 최악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주도 국가는 독일과 일본이었다. 인간공동체 최초의 세계전쟁이 끝났을 때 참상은 모두를 전율케 했다. 인간들은 골몰하였다. 이러한 대비극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요체는 과거청산과 반성이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의 철저한 청산 및 반성은 없었다. 세계냉전의 엄습은 전쟁범죄에 대한 최소범위의 책임추궁만으로 과거청산을 종식하도록 요구하였다. 독일문제와 일본문제가 온전히 국제정치문제이자 세계양심문제인 이유였다. 또 오직 세계문제로 접근할 때만 해결 가능한 연유였다.

 군대·법조·관료·기업·학술·문화·예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독의 나치청산은 철저하지 않았다. 전후 활동한 각 분야의 나치연루 저명인사들의 명단은 충격적이다. 소수 핵심책임자들 외에는 처벌받지 않았거나 요식행위에 그쳤다. 심지어 홀로코스트 직접 연루자들조차 처벌을 면했다. 그들의 당당한 변명 앞에 세계의 양심은 다시 길을 잃었다.

 그러나 세 요인이 독일의 근본적 전환을 초래하였다. 하나는 유럽68혁명과 나라의 민주화였다. 68혁명의 열풍과 사회민주당의 집권 이후 나치청산과 자기반성은 독일 정치와 사회의 전면에 부상하였다.

 둘째, 국제연대와 압력이었다. 프랑스·폴란드·러시아의 철저한 나치청산과 유대인들의 국제연대는 결정적이었다. 나치만행은 본격적으로 복원되고 기억되며, 교육되고 공유되기 시작했다. 주변국들의 과거극복과 나치청산 국제압력 앞에서, ‘전전 독일’ 유산을 유지해서는 ‘전후 독일’의 국익추구는커녕 고립이 불가피했다. 독일의 많은 곳에서 나치반성시설들이 건립 또는 복원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예루살렘까지, 베를린에서 워싱턴까지 기억시설들이 들어서며 ‘전후 독일’은 마침내 ‘전전 독일’과 분리되어 세계와 함께하기 시작하였다. 나치청산에 대한 독일의 지원 역시 ‘전전 독일’과 ‘전후 독일’을 절연, 후자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바꾼 계기였다.

 셋째, 독일통일과 유럽화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나치청산 없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합유럽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럽과 세계의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기를 넘어 반복되는 일본 총리와 정부의 언명과 행동 앞에서 아시아는 다시 말을 잃는다. 철저한 과거청산은 고사하고 1급 전범이 다시 총리를 맡았던 ‘전후 일본’이다. 일본 스스로의 사실직시와 범죄의식, 과거청산과 주변존중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비판과 비난은 결코 일본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없는가? 있다. 일본의 변화를 돕는 국제연대다.

 아시아 피해국들과 세계가, 독일처럼 일본이 ‘전전’ 군국일본, 국수일본, 침략일본, 파쇼일본과 단절하여 민주일본, 평화일본, 세계일본, 양심일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인들이 ‘전전 일본’의 만행을 보고 듣고 알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베이징·서울·호찌민·타이베이·하와이는 물론, 워싱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 옆에 (일본) 잔인성(atrocity) 메모리얼 박물관, 또는 제노사이드 박물관을 건립하여 제국주의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의 학살·위안부·인권유린·강제징용·강제노동·식민침략…에 대한 모든 기록과 영상과 증언을 수집·전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동남아 국가들…의 민간과 정부가 모두 참여한다. 물론 일본은 ‘진정한 전후’를 위해 핵심 참여국가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불참은 일본의 국제고립과 손해를 야기할 것이다. 유엔과 미국, 독일도 참여한다. 베를린처럼 도쿄에도 학살기억 단독기념물들이 건립되어 일본 국민과 세계인들을 교육한다.

 아시아의 4대 국제전쟁인 동아시아7년전쟁(1592~1598), 청일전쟁, 러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항상 침략자 또는 중심국가였다. 심지어 중국·한국·베트남에서의 전후 전쟁들조차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일방명령1호를 통한) 분단 때문이었다. 즉 일본제국주의의 산물이었다. 일본은 아시아 ‘모든’ 주요 전쟁의 당사자·책임자·연루자 가운데 하나였다.

 세계와 아시아는 일본과 함께 평화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시아 과거극복 세계연대운동에서 아시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의 선도국가인 한국이 앞장서자. 먼저 희생하자. 내부의 과거 극복노력과 모금운동, 토론모임부터 시작하자. 그리하여 2019년, 안중근 거사 110주년-3·1운동 100주년에 베이징·도쿄·서울·워싱턴 각지 ‘잔인성 박물관’의 준공식 또는 기공식을 갖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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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