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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박정희·박근혜 '미래 시계'

이규연
논설위원
2012년 7월, 당시 박근혜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첫 방문지로 정부통합전산센터를 찾는다.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미래전략센터를 구축해 국가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겠습니다.”

 이후 박 후보는 선거기간에 미래전략의 필요성을 종종 언급했다.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도 이를 국정과제로 채택한다. 하지만 그 구상은 1년 동안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황우여 대표가 국회연설에서 초당적 국가미래전략기구 설치를 제안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중장기 전략을 짜는데 ‘미래 시계(視界)’는 핵심 고려 요소다. 몇 년까지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까. 유행에 민감한 의류는 3~ 6개월 앞을 보지만 로봇·생명공학 같은 산업은 수십 년 앞을 내다보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 달, 1년 단위로 할 일과 30년, 50년 단위로 추진할 사안이 따로 있다.

 우리 국가 운영에서 명확한 시계가 제시된 것은 1961년 7월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민주당 정권이 짜놓았던 구상을 토대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글자 그대로 시계는 ‘5’였다. 1987년 전까지 다섯 차례의 5개년 계획이 세워진다. 단순 구상이 아니라 국가 역량을 총동원한 실행 전략이었다. 비록 빈부격차와 사회모순을 증폭했지만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선진국 따라가기에 ‘5’는 유효했다. 산업·사회의 복잡성이 커진 지금은 5년보다 더 긴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창조·지식 산업 육성이 대표적이다. ‘다운슈팅(down-shooting) 효과’라는 게 있다. 어떤 문제에 돈·시간을 써도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올라가기는커녕 떨어진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작동하면서 거래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수년 이상 지속되고 난 뒤에야 성과가 오른다. 문제는 우리가 다운슈팅 효과를 참아낼 수 없는 정치적·행정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 있다.

 공공기관에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5’가 남아 있다. 장기 계획을 세웠다 하면 관성적으로 5개년이다. 여기에 87년 이후 들어선 대통령 5년 단임제까지 포개지면서 ‘더블 파이프 효과’가 국정을 짓누른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동안 5년 시한부 어젠다만 생몰(生歿)했다. 선진국이 될수록 중장기 국가전략이 필요한데, 대통령 어젠다만 있고 정작 국가전략은 없는 황당함이 반복됐다.

 역대 대통령은 저마다 국가 비전을 세웠다. 21세기위원회(노태우), 세계화추진위원회(김영삼), 밀레니엄프로젝트(김대중), 국가비전2030(노무현), 미래기획위원회(이명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 정부가 세운 중장기 전략은 다음 정부에선 곧바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런 행태가 반복되다 보니 국가전략 계좌의 잔고는 항상 바닥 수준이 됐다.

 21세기위원회가 그랬다. 김영삼 정부에서 정권 홍보 성격의 정책기획위원회로 바뀌더니, 김대중 정부에서는 일개 부서로 주저앉는다. 노무현의 2030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래기획 구상에 참여했던 Q씨(국책연구원 박사)의 증언. “ 2030에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어요. 일부를 받아들이자고 했다가 혼났어요. 결국 2030에 담긴 걸 빼고 보고서를 쓰다 보니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딴 나라 사람들도 아니고….”

 청와대는 미래기구 구상을 비공식적으로 진전시켜 왔다. ‘국가미래전략기구’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듯 역대 정부와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기구를 어디에 설치하든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된다. ‘5년 이상의 시계를 갖는다. 다음 정부에서 승계 가능한 조직을 만든다. 성장 위주에서 벗어나 경제·사회·문화 복합전략을 짠다’. 이른바 선진국들은 모두 미래전략을 세우고 승계시켜 나간다. 박정희 ‘5’와 대통령단임제 ‘5’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롭게 국가 대계(大計)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이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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