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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구한말 '처마의 제비' 경고 되새겨볼 때

오영환
논설위원
중국의 부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 스스로도 그렇다. 왕이 외교부장은 역사상 15차례 국가의 부상이 있었으며, 11차례 신흥 강국과 기존 강국 간에 전쟁·대립이 일어났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대미 외교정책 ‘신형 대국관계’를 설명하면서다. 그러면서 그는 14자 방침을 내놓았다. 불충돌·불대항·상호존중·합작공영이다. 미·중이 과거의 실패에서 배워 윈-윈의 새 모델을 만들자는 취지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지난달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대 신흥 강국 아테네와 패권국 스파르타의 필로폰네소스 전쟁이 결국 양국 모두를 몰락하게 했다는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성찰을 두고 한 말이다.

 동아시아의 분쟁과 대립은 중국의 급부상이 몰고 온 역학관계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기존 좌표축을 지키려는 쪽과 새로운 룰과 질서를 만들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 중국의 전방위 부상은 속도와 규모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과 서에서 마찰과 전쟁을 부른 일본과 독일의 부상과도 견줘지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오고 일본의 공세적 안보정책을 밀어주는 것은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 게다. 미국의 힘이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난 지 오래다. 자유와 인권 신장의 소명을 지녔다는 미국 예외주의는 식고 있다. 신고립주의 경향마저 보인다. 미국은 일본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재무장하고 무력 사용에 대한 평화헌법의 족쇄를 푸는 것은 미국 국익과 맞아떨어진다. 동아시아에서 중·일 대치 국면의 장기화가 불가피 하다.

 중·일 간에는 파워 게임만이 아니다. 과거사도 교차한다. 중국에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는 굴종의 근대사를 상징한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편입시킨 것은 1895년이다. 그 한 해 전 일어난 청일전쟁 와중이다. 이 전쟁은 아편전쟁과 더불어 중국 역사의 분기점이다. 19세기 초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중국의 자존심을 산산조각냈다. 청일전쟁은 중국에 트라우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1972년 국교 정상화 교섭 때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에게 "1000년의 우호 교류 역사가 있지만 50년의 불행한 시기도 있었다”고 했다. 45년 일본 패전에서 역산하면 기점은 청일전쟁이다. 장쩌민 국가주석도 98년 방일 때 갑오전쟁(청일전쟁)을 언급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이 상실한 권리를 복원하려는 영토 문제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메이지유신과 일제 군국주의에 의한 굴욕의 역사관이 걸쳐 있다. 1924년 “일본은 서양 패도(覇道)의 개가 될 것인가, 동양 왕도(王道)의 간성이 될 것인가”라며 평화의 길을 호소한 중국 국부 쑨원의 연설은 반면교사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일본에서 현재의 중국을 1930년대 일본에 견줘 쑨원의 연설을 중국에 되묻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꿈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의 혼을 얘기하고 있다. 과거의 영화와 뗄 수 없는 국가주의가 어른거린다. 동아시아 세력 판도는 한국에 달렸다. 한국이 미·일과 중국의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바뀐다. 구한말 조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청과 일본 간 정세가 바뀌는 형국과 닮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략적 요충의 가치는 그대로다.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지만 뒤집어보면 우리가 판을 주도할 수 있다. 미국과는 동맹국이다. 중국과는 전전(戰前)의 과거사를, 일본과는 전후 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숨통을 트고, 한·미·일과 한·중·일의 투 트랙 틀을 만들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외교를 펼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이것이 강대국 간 권력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일지 모른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눈을 감으라는 게 아니라 역사전쟁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세를 논하는 담론은 얕고 분열돼 있다. 정책도 강철의 원칙이 비단의 유연성을 지배한다. 구한말 주일 청국 참사관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조선을 부엌에 불이 났는데도 정답게 지저귀는 처마의 제비에 견준 경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 지혜가 있다.

오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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