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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으론 설명 안 된다, 들끓는 한국 사회

강신주(左), 강준만(右)
출판가에서 ‘감정’이 주목받고 있다. 철학자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의 『감정 독재』, 번역서인 『탈감정사회』 등 감정을 공통분모로 하는 책이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출간됐다. 올 상반기 중에 미국 법철학자 마사 너스봄의 신간 『Political Emotions(정치적 감정·가제)』도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정치적 판단에 미치는 감정의 영향을 분석한 책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다.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는 봄호 특집으로 감정을 다룬다. 바야흐로 ‘감정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은 시의성 있는 주제 선정에다 스타 강사인 저자의 인기가 한몫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책은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분류한 비루함·자긍심·경탄 등 48개의 인간 감정을, 각각의 감정이 잘 드러난 문학작품에 하나씩 대응시켜 새롭게 풀어내고 있다. 모호해 보이는 인간 감정에 대한 이해와 문학 감상을 동시에 겨냥하는 것이다.

2008년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의 ‘광우병 촛불시위’ 현장. 광우병에 대한 과학계의 평가와 저널리즘의 문제제기가 엇갈리는 가운데 대중의 분노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감정의관계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중앙포토]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먹고 사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압도적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가령 직장 상사 앞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참아야 한다!) 감정 표현을 억압해온 사람들이 결국 스스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그런 사회적 현상이 감정을 소재로 한 책이 주목받는 결과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감정 독재』(인물과사상사)는 감정에 대한 우리 태도의 이중성을 언급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매끄러운 매너와 태도가 강조되고 있다. 표정이나 음성 관리의 실패는 대인 관계의 미숙함이나 투박함의 표지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의 행동은 그같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저자는 펼치고 있다. ‘감정 독재’라는 제목을 붙인 배경이다.

 보다 학술적 성격의 책인 『탈감정사회』(한울아카데미)는 국내외 사회학계의 최신 흐름에 기대고 있다. ‘감정사회학’이라는 흐름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는 “미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감정적 전환(emotional turn)’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후 감정사회학회가 미국·호주 등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정사회학은 인간의 이성을 만능으로 여기며 유토피아를 꿈꿨던 19~20세기의 흐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오히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동안 이성에 밀려 일종의 천덕꾸러기 취급까지 받던 감정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성-감정, 문명-자연, 합리성-비합리성 등 이분법적 대립항 가운데 늘 합리성·이성에 의해 극복되고 통제되어야 했던 대상인 감정의 복권이라고 볼 수도 있다.(박형신·정수남 공동논문 ‘거시적 감정사회학을 위하여’, 학술지 ‘사회와 이론’ 2009년 하반기호 수록)

 한국 사회의 경우도 기존 사회과학 이론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힘들다는 반성 아래 감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홍중 교수는 “아직 정식 학회도 없고 관심 있는 학자도 대여섯 명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감정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도 “한국 사회만큼 이른바 감정노동이 빠른 속도로 상품화되는 나라도 없다”며 “감정의 영역을 사회학에서 다뤄볼 만한 시점”이라고 했다.

 『탈감정사회』의 경우는 ‘뜨거운 감정’이 분출하는 한국의 현상과는 정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히려 감정의 소멸을 말한다. 저자는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스테판 메스트로비치 텍사스A&M대 교수. 현대인은 디즈니랜드식 인공낙원 혹은 매끄러운 TV 화면 등을 통해 순조롭고 대립 없는 감정만 허용되는 ‘감정의 맥도널드화’가 체화되어 있다는 분석을 담았다. 정작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다시 말해 진정성을 상실한 인종이 되어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탈(脫)감정’이라고 했다.

 메스트로비치 교수의 ‘탈감정 분석’이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까. 이 책을 번역한 박형신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사회는 완벽한 탈감정사회는 아니지만 탈감정적 성격은 분명히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홍중 교수는 반대 입장이다. 그는 “한국은 합리성보다는 합정성(合情性), 혹은 ‘감정합리성’의 사회”라며 “정치사 전체를 감정의 역사로 다시 쓸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서적 분위기가 주요한 판단의 근거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감정 과잉인지, 아니면 감정 과소인지, 이에 대한 향후 논의도 지켜볼 일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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