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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돈줄 쥔 중국, 바둑판 틀을 바꾼다

바둑판에 중국의 ‘돈’이 밀려들며 대회 양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세돌 9단(오른쪽)이 베이징에서 열린 구리 9단과의 10번기 1국에서 승리한 후 복기하는 모습. [사진 한국기원]

2014년 세계바둑은 중국 대륙에서 시작됐다. 이세돌-구리 10번기 1국이 지난달 26일 베이징에서 열렸고 이세돌-스웨-무라카와 다이스케의 한·중·일 삼국대결도 지난 2~4일 베이징에서 열렸다. 10번기의 첫판에서 이세돌 9단이 구리 9단을 넉아웃시킨 것은 새해의 기분 좋은 뉴스였다. 기러기 아빠였던 이세돌 9단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내와 딸을 베이징에서 만난 것, 그리고 딸 해림(8)의 재롱과 이세돌의 환한 미소도 올해 한국바둑의 전망을 밝게 해줬다. 한국랭킹 1·2위는 박정환 9단과 김지석 9단이고 이세돌은 3위로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세계바둑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한국 대표’는 여전히 이세돌이다.

 2~4일 베이징의 CC-TV가 전국에 중계한 하세(賀歲)배에서 활짝 웃던 이세돌 9단이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세배는 한·중·일 바둑삼국지 형식의 이벤트였는데 중국 1위 스웨, 한국 이세돌, 일본 1위 이야마 유타가 초대됐다. 이야마 유타가 기성전 도전기와 일정이 겹치며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이 대신 왔는데 이세돌이 바로 이 일본의 무명 무라카와에게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누구에게라도 질 수 있다는 경고장 같은 한 판이었다. 우승컵은 세계랭킹 1위 스웨에게 돌아갔다.

 이런 빅 이벤트들을 곁에서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멀리서 봐도 확연한 것들이 있다. 세계바둑의 ‘돈줄’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10번기는 거의 1년 내내 열리는 것이고 패자가 받는 상처도 커서 우승상금 8억7000만원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대회가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37세의 젊은이가 주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세배는 또 어떤가. 이름 그대로 ‘새해를 축하하는 대회’라는 뜻인데 한·중·일을 대표하는 3명의 기사가 3일간 단 3판의 바둑을 두어 승부를 결정했다. 상금은 1등 80만 위안(약 1억4000만원), 2등 40만 위안, 3등 20만 위안으로 6개월~1년 걸리는 공식 기전 못지않다. 이런 대회를 단 3일 만에 뚝딱 해치우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열린 주강(珠鋼)배나 스포츠 어코드 역시 비슷했다. 억대의 상금을 내걸고 단체전, 상담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지만 전 일정이 불과 5~6일 만에 끝났다.

 바둑대회도 골프대회처럼 6개월~1년씩 끌지 말고 시작하면 바로 끝나는 게 좋다고 답은 나와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오랜 전통 때문에 손대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금기가 중국에 의해 가볍게 깨져 나가고 있다. 바둑대회도 골프대회처럼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중국이 바둑천국이 될지 프로의 무덤이 될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중국에선 지난 한 해에만 바이링배와 몽백합배 같은 굵직한 세계대회가 생겨났고 10번기에 이어 주강배, 하세배 등 이벤트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리그에는 한국 일류들 중 대부분이 용병으로 출전하고 있다. 중국바둑의 이런 고도성장은 한국기사들에겐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은 일본처럼 두더지 굴을 파고 들어가 숨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과 계속 대결하겠지만 ‘실력’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중국바둑 역시 한국의 강력한 도전 없이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 2014년이 기로가 될 것 같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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