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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제자=김홍일-6사장 김일성의 성분

필자는 제6사장 김성주(본명 김성주)의 정체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혜산사건(보천보 습격사건 관련자의 검거선풍)의 담당검사였던 일인 향천 원씨(72세)를 70년 여름 동경에서 찾아 만났다. 향천은 김일성의 정체에 관한 피의자들 진술내용에 관해서는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내주었다. 기소를 마친 날 경찰측 수사관계자들과 같이 함흥지방법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인데 그 속의 한사람을 가리키며 도에서 혜산진에 파견되었던 수사책임자인 고등과의 경부라고 알려준다.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제일 잘 알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일성 부대 여대원의 진술>
이 한장의 사진을 갖고 다니며 2개월을 수소문한 끝에 그 도고등과 경부의 이름이 시원감일이란 것을 알아냈으며, 이 사람을 만나게된 것은 6개월 후의 일이었다.
1971년 2월 동경에서 시원(75세)씨는 『보천보 습격의 김일성에 대해 풍문도 많았으나 혜산사건 피의자들을 심문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그 정체가 파악된 것이며 풍문은 모두 위장 유포된 것이었음을 알아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북한의 「김일성」은 보천보 습격의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란 것을 자기는 짐짓 알고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혜산사건의 1, 2차 검거에서 근 5백명이 잡혔고 2백여명이 기소되었다.
김일성의 인적상황을 아는 사람은 그 많은 피검자들 중에서도 거의 없었으며, 국내의 각 기관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권영벽(권창욱)·이제순·박달·박금철 등 김일성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극히 제한된 간부들은 알고있었다.
처음엔 이 간부들도 김일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 부대의 여자대원으로 잡혔던 박녹금 이었다. 박녹금은 여대원의 임무에 대해 말문을 열다가 자기가 아는 것을 다 털어놓았다.
<6사장 김일성 종전 때 44세>
여자들은 재봉 일을 하다가 습격 때엔 약탈한 물자를 운반한다고 했고, 김일성은 장백현 몇 도구의 농가에 내연의 처가 있어서 그리로 자주 출입한다고 했다. 최모라는 여자라고 했다. 이 말에 따라 최모 연인을 체포하러 갔는데 이미 달아나고 없어서 허탕이었다. 권영벽과 「이만」(노령) 출생의 서인홍(서응진) 등 대안에 있던 간부들은 김일성과 최여인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국내간부들은 아무도 몰랐다.
박녹금은 김일성의 나이가 36세, 본명은 김성주, 「모스크바」에서 공산대학을 나왔고 만주사변 후에 소련에서 만주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진술했다. 박녹금에 의해 김일성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권영벽·이제순·박달·박금철 등 간부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었다. 그들의 진술은 박녹금의 진술과 일치했다. 김일성의 인적상황에 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이 김일성과 김성주에 관해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북조선의 김일성은 보천보 사건의 김일성과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라고 본다. 진짜 김일성은 죽고 소련이 딴사람을 바꿔보낸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지금사람과 당시의 사람과는 나이와 학력이 다르다. 사형선고를 받은 권영벽이란 사람만 하더라도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때 그 사람 나이도 35∼36세였는데 그런 자가 추종했을 정도라면 김일성은 학력·투쟁경력·나이 등에 있어서 권보다는 위였을 것이 당연하다.
박금철은 진짜 김일성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므로 그 때문에 한때 이용당하다가 숙청 당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나는 대구에서 도경고등과장으로 패전을 맞이하여 5개월 가량 있다가 일본에 돌아왔는데 대구에 머물러 있을 때 평양에 김일성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천보를 습격했던 김일성은 그후 만주에서 토벌대에 사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런데도 얼마 안 있다가 또 김일성 부대가 출몰한다해서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는 이야기들이 만주에서 들려온 일도 있었는데 패전돼서 북조선에 김일성이 돌아왔다 하니 나는 사살됐다는 것은 결국 헛소문이었구나 하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런데 곧 또 대구에까지 소문이 오기를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은 32∼33세의 청년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혜산사건 때 김일성의 나이 36세였으므로 종전 때는 44세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딴 사람이라고 믿었다.
<당시 25세 김일성과는 판이>
시원씨는 담담하게 기억나는 데까지 조용히 말을 맺었다. 필자는 이중대한 증언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보천보 습격의 김일성의 나이가 36세였다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는가 되물었다.
이에 대해 시원씨는 『혜산으로 사건조사차 출장 갔을 때 내 나이가 42세였다. 지금은 75세이다. 나는 그때 김일성의 나이가 36세라는 진술을 받으면서 나보다는 좀 아래 또래의 인물인데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라고 선뜻 대답했다. 필자는 함경도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일인 경찰관들 몇 사람을 만나 당시 소문으로는 김일성은 27∼28세, 또는 30세 정도였음을 알았고 그때의 신문 보도에도 그렇게 나와있지 않는가 재차 물었다.
그는『그것은 뜬소문이었다. 김일성의 부하인 피의자들 중 직접 김일성과 늘 상종했던 간부들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니까 정확하다.
27∼28세나 30세 가량이면 내가 아주 젊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겠지, 나보다 좀 아래이구나 하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그가 혜산에 갈 때 도에서 데리고 갔던 개목씨(당시 순사부장)가 마침 이웃에 신병으로 입원 중에 있었다. 개목씨는 박금철 등 국내 간부들을 취조했던 수사관이다.
전화 속에서 울려나오는 개목씨의 대답은 생각하는 여유도 없이 당장에 나오는 대답이었다. 『당시 김일성의 나이는 40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김일성은 공산대학출신이라고 박금철·마동희 등이 말했었다』.
<37년에 피살 이미 존재 않아>
이로써 보천보 습격의 제6사장 김일성은 본명 김성주, 36세(사건당시),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 1932∼33년께 소련서 입만 했던 사람이란 것이 판명됐다. 사건 때 약탈 물을 운반했던 지방인들이 김일성은 40세정도의 사람이더라고 한 말과도 맞는다. 당시 25세의 김성주와는 판이한 사람임이 입증된다. 혜산사건 심문조서는 북한당국이 가지고 있다. 북한측이 이 입증을 반박할 자신이 있다면 그 신문조서를 공개하면 될 것이다.
또 딴 자료에 의해 제6사장은 함남출신이란 것도 확인된다. 영구지태랑저 『극동의 계획과 민족』속의 「만주의 비적적화와 조선인」장, 그리고 칙무삼웅저 『압록강』속의 「비적과 압록강」장에 김일성이 함남태생임이 기록되어있다. 김성주는 평남출신이다. 이렇게 인적상황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제6사장 김일성은 1937년11월13일 사살되어 이미 생존치 않는다. 【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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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