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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수퍼리치와 그 나머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올해 국정연설은 한국 언론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설 연휴에 묻혀버린 탓도 있지만 눈길을 끌 만한 내용 자체가 없었다. 미국 국내 문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제 문제는 구색 갖추기로 몇 줄 걸치고 넘어가는 수준에 그쳤다. 단골로 등장하던 북한이란 단어는 아예 언급조차 안 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국정연설을 주목하는 이유는 오늘날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를 정면으로 찔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책임지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신념이 무너진 미국의 현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믿음이 깨진 현실 말이다. 그는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살고 있지만 미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상향 이동은 멈춰 섰다”는 말도 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대다수 미국인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남은 임기 중 기회의 사다리를 재건해 중산층을 늘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의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대통령 권한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해서라도 불평등 해소에 발벗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캐나다 출신의 경제 전문 언론인이자 정치인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s)』란 책에서 최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 회복세를 몇몇의 뛰어난 학생 때문에 평균점수가 높게 나온 학급에 비유했다. 2009~2010년 미국은 2.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 기간 중 미국인 99%의 소득은 0.2% 증가에 그친 반면 최상위 1%의 소득은 11.6% 증가했다는 것이다. 성장의 과실이 돈과 권력을 양손에 거머쥔 1%의 플루토크라트에 집중되면서 나머지 99%의 삶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사회는 1%의 수퍼리치와 그 나머지로 계층 분화 구도가 고착됐다는 것이다.



 소득 불균형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는 1차 산업혁명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엄청난 변혁기를 맞고 있다. 1차 산업혁명 때는 기계가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체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디지털기기가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해 가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년 내에 현존하는 일자리의 47%가 자동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선진국의 미숙련 일자리는 오래전 신흥국과 개도국으로 넘어갔다.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반면 세계화와 기술혁명을 선도하는 소수의 자본가와 기술혁신가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다. 기술혁명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부모의 경제력과 직업이 자식은 물론이고 손자의 미래까지를 결정하는 시대다. 그로 인한 계층 분화는 동일 계층 간 결혼문화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멈춘 사회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소득 불균형이 심한 사회일수록 우울증과 정신착란 같은 정신질환 발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서베이조사연구센터가 성인 남녀 2만10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말단 직원 간 적정 연봉 격차를 12배로 보고 있다(중앙SUNDAY 2월 2일자).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벌어져 있다. 그렇다고 허용할 수 있는 격차를 법으로 정해 강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기술혁명의 추세에 맞춰 각자 몸값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교육이고 훈련이다. 학교 교육이나 직업 교육과 연계해 기술 변화에 얼마나 발빠르게 대응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소득 불균형 해소책의 하나로 오바마가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은 미봉책일 뿐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둘 다 놓치고 말지만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두 가지 모두를 상당 부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는 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지금은 불평등의 골이 너무 깊다. 이대로 가면 자유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을 이어주는 가치는 형제애다.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빛을 발하는 이유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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