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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줄고 헬기 소음 …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

24일 충남 당진시 삽교호에서 쉬고 있는 가창오리 무리. 이들은 해 질 녘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군무를 펼친다. 올겨울 AI 발생 지역이 서해안 철새도래지 부근에 집중되면서 가창오리 등 철새가 AI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뉴스1]

“계절 변화에 순응해 수백만 년 같은 길을 오가는 우리가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네요.”

 요즘 겨울 철새들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지역이 확산되고 농가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다. 28일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위원회에서 “국내 발생 고병원성 AI가 철새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면서 겨울 철새들이 AI를 전파한 ‘범인’으로 사실상 낙인이 찍혔다.

특히 철새 중에서도 가창오리가 주범처럼 됐다. 지난 18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 수십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고, 그 사체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탓이다. AI 발생 농가들이 동림저수지나 충남 서천 금강호, 전남 영암 영암호 등 가창오리가 찾는 철새 도래지 인근에 위치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철새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AI를 옮겼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사람들 책임도 크지 않나요.”

  환경부는 29일 ‘2014년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통해 올겨울 우리나라를 찾은 겨울 철새는 126만9396마리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수치다. 24~26일 전국 195곳에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가창오리는 금강호 25만 마리, 동림저수지 7만 마리 등 36만5641마리가 관찰돼 지난해보다 5% 늘었다.

 이처럼 가창오리의 경우 매년 30만~40만 마리가 우리나라를 찾는다.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겨울을 나는 가창오리는 2만 마리 정도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84년 2월 국내에서 처음 가창오리가 떼를 지어 월동하는 것이 목격됐고, 숫자도 5000마리에 불과했다.

 가창오리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부터다.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가 처음 이뤄진 99년 23만 마리가 관찰됐다.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인 이기섭(조류생태학) 박사는 “서해안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이 이뤄지면서 겨울 철새, 특히 가창오리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드넓은 간척지 논은 가창오리가 벼 낟알을 주워 먹기에 좋았고, 큰 담수호는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쉼터였다. 가창오리들 사이에 ‘최고의 월동지’로 입소문이라도 난 걸까. 전 세계 가창오리의 80~90%가 한국 서해안을 찾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2009년에는 가창오리 106만여 마리가 도래해 전체 겨울철새의 54.7%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많이 짓는 영남지방에는 가창오리 떼가 앉을 만한 곳이 적어 서해안으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겨울마다 날아오는 철새의 먹이 구하기는 예전만 못하다. 농가에서 소여물로 사용하기 위해 볏짚을 비닐로 싸두기 때문이다. 이처럼 볏짚 말이를 하면 철새가 주워 먹을 낙곡도 줄어든다. 다른 철새들은 마을 근처 논밭까지 기웃거리지만 겁이 많은 가창오리는 그러지도 못한다.

 전북대 주용기 전임연구원은 “가창오리 떼가 철새 도래지 한 곳에서 20일 정도 지내면 주변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져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I 발생으로 철새 먹이주기를 중단한 게 오히려 AI 확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27일 성명을 통해 “(먹이를 찾기 위한) 철새 이동이 늘어나면 감염된 야생 조류와 사람들 그리고 가금류 사육 농가의 접촉 빈도를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이 29일 천수만과 순천만 등 전국 7개 지역에서 철새 먹이주기 활동에 나선 까닭이다.

 한국교원대 박시룡 생물교육과 교수는 “철새 먹이주기가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철새들이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면 자생력을 잃을 수도 있고 한 곳에 철새들이 너무 많이 몰릴 경우 AI가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AI 발생 이후 철새들도 편치가 않다. 방역차량들이 철새 도래지 주변에서 소독을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방송 헬기들이 철새 도래지 위를 날아다니는 탓에 철새들이 놀라 달아나기 일쑤다.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헬기를 동원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 연구원은 “헬기 소음에 놀라 갑자기 날아오르면 철새의 체력 소모가 심하다”며 “철새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AI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철새들은 유전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AI 바이러스에 접촉돼도 일부만 피해를 입고 대부분 개체들은 잘 살아남는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농장에서 기르는 오리·닭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데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는 탓에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큰 피해를 입는다. “철새를 탓하기 전에 닭·오리의 열악한 사육 환경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조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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