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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현대판 문안비, 설날 인사 여쭙니다

이후남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문안비(問安婢)는 요즘은 보기 힘든 세시풍속이다. 과거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양반집 여자들이 일가친척에게 새해 인사를 대신 보냈던 여자 하인을 이르는 말이다. 비록 신분은 하인이지만 정초 주인을 대신해 인사를 갈 때는 옷도 잘 차려 입었고, 그를 맞이하는 상대방 역시 한 상 차려 대접을 해줬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시풍속사전은 이를 콕 짚어 ‘서로 사돈 관계가 되는 부녀자들이 새해 안부를 전하기 위해 대신 보낸 여자 노비’라고 소개한다. 사돈이라면 요즘에 비춰봐도 쉽지 않은 관계이니, 과거엔 꽤 격식을 차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기로는 궁궐에 사는 왕족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문안비가 궁궐을 자유로이 출입한다며 타박하는 내용이 가끔 눈에 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왕후나 세자빈 같은 왕실의 여자들이 궁궐 밖의 부모형제와 문안비를 통해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았을 법하다. 때로는 왕도 그랬다. 조선왕조 말기 고종 때의 기록에는 ‘설날을 맞아 도승지를 보내 운현궁에 문안하게 했다’는 구절이 거듭 나온다. 운현궁이라면 당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살던 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이란 세습직에 종신직이다. 그래서 왕의 아버지는 선대 왕인 게 상식적이지만, 왕위를 이을 직계가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종은 왕의 아들이 아닌 종친 가운데 왕위에 오른 경우였고, 그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생전에 아들이 왕위에 오른 영광을 톡톡히 누렸다. 그에게 설마다 문안을 갔던 도승지는 정3품의 고위 관료였다. 여느 양반집 문안비와는 확실히 격이 다르다.



 사실 자녀가 암만 출세해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그래서 어떤 고관대작을 대신 설 인사차 보낸다고 해도, 혹은 바리바리 귀한 선물을 택배로 보낸다고 해도, 잠깐이나마 자녀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한 게 부모들의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요즘의 세상살이는 참으로 각박해서, 피차 구중궁궐에 사는 처지가 아닌데도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마음만큼 잦지 않다. 한편으로는 남들 쉬는 설 연휴에도 평소대로 맡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또 설 연휴가 예전보다 길어졌다고 해도 서로 멀리 떨어진 시댁과 친정을 고루 찾지 못하는 며느리들도 적지 않다. 현대사회에도 문안비 노릇을 해줄 그 무엇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이미 연말연시에 너나없이 받았을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휴대전화 문자도 현대판 문안비 역할을 하곤 한다. 똑같은 내용으로 단체 발송되는 문자가 많아 원성도 자자하다. 한데 특정 상대에게 각별한 마음을 담은 문자라면, 아니 제 목소리를 온전히 담은 전화 한 통이라면, 서로 얼굴 맞대고 설 쇨 형편이 못 되는 이들에게 요긴한 하인이 되지 말란 법 없다.



이후남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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