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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카드사태에 숨죽인 분들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요즘 금융계의 높으신 분들은 좌불안석일 것이다. 신용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가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여야가 나서 국정조사와 청문회까지 한다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가긴 어려워 보인다. “나까지 불똥 튀는 것 아냐” 하는 문책 불안이 커질 수밖에.

 높으신 분들의 불안을 키운 건 아마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3개 신용카드회사 사장들이 지난 20일 낸 사표였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처음엔 적당히 잘 넘어갈 줄 알았을 것이다. 애초 3개사 사장들의 8일 첫 사과 회견은 누가 봐도 의례적이란 게 눈에 보였다. 정보를 빼낸 KCB 직원 책임이라며 사과 회견도 KCB와 따로 했다. 기자들이 같이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했다고 한다. ‘주범은 저쪽, 우리도 피해자’로 비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복기해 보면 참 안이한 대응이었는데 사실은 당시 금융 쪽 분위기는 그 정도였던 거다. “에이, 매번 있는 일인데, 뭐. 또 한 건 터졌군. 규모가 좀 큰 정도네.” 스위스 다보스에 있던 대통령의 “엄중 문책” 한마디가 없었으면 3개사 사장이 그날 저녁 일제히 사표를 내는 일도 아마 없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것 자체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대충 그 정도면 충분히 여론이 잠잠해져야 했다. 그게 청와대나 금융회사가 바란 효과요 기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기대 밖으로 흘렀다.

 되레 언론 보도가 봇물처럼 터졌다. 대출모집인과 브로커, 허술한 금융 보안, 사회의 보안 불감증까지 온갖 문제가 파헤쳐졌다. 몰랐던 새 사실이 마구 드러난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 전체에 만연한 일이란 걸 누구보다 보도하는 기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이 일어나듯이, 내 정보가 갖은 방법으로 빼내지고 가공돼 가격표가 매겨져 공공연히 팔리는 사회를 더는 언론이든 국민이든 참아주기 어려워진 것이다. 한번 필을 받으면 끝장을 보는 우리 사회의 쏠림증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사실 그럴 만했다. 수십 년간 터진 사고는 부지기수인데 제대로 책임지는 누군가를 본 기억이 나는 없다. 3년 전 농협의 전산망이 뚫려 큰 사회 문제가 됐지만, 별일 없이(?) 지나갔다. 최원병 농협 중앙회장은 “나는 모른다. 나도 직원들에게 당했다”란 면피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그뿐이었다. 과연 대통령과 동문인 선출직 회장의 위력은 셌다. 그는 전무를 대신 내보내고 자신은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으며, 얼마 뒤 연임 선거에도 이겼다.

 같은 해 175만 건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던 현대 캐피탈 사태도 과정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아주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유출된 바람에 파장이 컸다. 정태영 사장은 외국에서 급거 귀국해 사과했다. 그래도 워낙 사안이 사안인지라 중징계 여론이 높았지만, 결국 금융감독원은 사건이 잊혀질 때까지 시간만 끌더니 ‘시늉 징계’에 그쳤다.

 그 뒤론 불문가지다. 최근 2년간 금융사에서 1만 건 이상 정보가 유출된 사고가 20건 넘게 터졌다. 물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뭔가. 요즘 쏟아지는 대책들, 피자·치킨 배달부터 100만원 이하 소액결제까지 모든 금융거래의 무차별·무조건적 보안 강화다. 불필요한 시간·비용, 국민 불편만 잔뜩 키운 셈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다 무시하고 경제부총리라는 이가 “어리석은 사람은 책임을 따진다” “국민도 책임이 있다”고 했으니 뭇매를 번 것도 당연하다.

 부총리의 무개념 발언까지 겹쳐 이래저래 문책론은 더 힘을 받게 됐다. 뒷골 뻣뻣해지신 분들, 억울하겠지만 어쩌랴. 원죄가 있잖은가. 지난해 모 금융지주회장 공모 때 한 금융계 인사는 내게 “누가 되든 무사히 임기 마치고 걸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다. 금융사 수익은 나빠졌고, 보안이 부실해졌으며, 내부 리스크 관리는 엉망이다. 낙하산이 줄줄이 떨어지면서 금융을 장악한 결과다. 정권 입맛에 맞는 한 건 실적에만 매달렸으니 금융의 기본이 흔들린 것이다. 그 대가를 국민이 지금 밀린 숙제 하듯 대신 치르고 있다. 아무리 큰 머리를 쳐낸들 분이 안 풀릴 것 같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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