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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공학교육 제자리 찾기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물리학 교수
최근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의 하나로 공과대학 혁신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연초부터 미래창조과학부·교육부·산업부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팀(Task Force Team)을 구성했고,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에 민간전문가와 관계부처 고위공무원이 참여하는 ‘공과대학 혁신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도 관련 사항 보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우리나라 공과대학들이 SCI 논문 등 연구실적 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으나, 신기술 창출과 아이디어의 실용적 활용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 공과대학 내에서도 교수들 사이에 실용적 응용연구와 교육을 추구해야 할 공과대학이 너무 논문업적에 치중해 막상 산업체와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고 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있어 왔다. 실제로 대학의 연구비 중에서 민간기업으로부터 수주하는 산학협력 연구비의 비중은 감소추세에 있으며, 서울대 공대의 경우도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 또한 산업체에서는 대학 교육이 너무 이론에 치중되어 졸업생들을 실무에 투입하기 어렵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국내대학과 산업체의 협력이 원활하지 못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산업과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창조경제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와 대학 당국의 획일주의와 전시행정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BK21사업 같은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에서 연구역량의 평가는 대부분 SCI 논문으로 하고 있다. 또한 교수 승진이나 업적평가에서도 논문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것도 대부분 계량적이고 획일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분야의 고유한 특성은 무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에는 중요하지만 논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 전통공학분야는 오히려 홀대를 받게 된다. 대학당국의 전시행정도 문제이다.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학평가에서도 논문 숫자가 매우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대학평가 순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총장들은 교수들의 논문 생산에만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산학협동의 업적이라든지 교육의 질 같은 항목은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이 같은 획일성과 ‘한 줄 세우기’는 탈피해야 한다. 이제는 분야별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평가 기준과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 분야는 논문으로 승부를 하더라도 공학 분야는 산학협력이나 신기술 창출에 비중을 두는 평가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공학 내에서도 세부분야에 따라 평가기준을 다르게 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한 예로 소프트웨어 분야는 학회 발표가 중요하므로 그런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별 미션에 따른 차이 또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실무형 공학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과 미래를 위한 첨단 공학연구자를 양성하는 대학은 그 교육과정과 평가제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창의사회의 키워드(key word)는 다양성이다. 분야별 다양성과 학교별 차이를 인정하고 특성에 맞추어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관료사회는 기본적으로 획일성에 익숙하기에 ‘공과대학 혁신’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또 하나의 획일적인 공대 모델을 만들까 봐 겁이 난다. 만일 지금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모든 대학 지원사업에서 산학협력 실적 강화를 일률적으로 강요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획일적 모델이 될 것이다. 첨단 미래공학을 연구하는 대학이나 교수에게는 지금처럼 논문 위주의 평가가 맞다. 다만 모든 공대 교수가 이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이와는 별도로 산학협력 위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다. 대학에 따라, 교수에 따라 각각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구할 수 있게 하되 지금보다는 산학협력 프로그램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사실 대학지원 프로그램의 다양화는 공과대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인문사회와 예능계를 비롯한 대학의 모든 분야가 ‘획일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에서 저술보다는 논문, 특히 외국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비중 있게 인정하는 것이 한 예일 것이다. 이 역시 정부와 대학 당국의 획일주의와 전시행정에 원인이 있는데, 선진국형 창의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빨리 벗어나야 할 구태(舊態)다. 한국 대학도 이제는 외국 기관의 평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 있게 자신만의 모델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서울대 물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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