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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과 꼭 받아야 해"

26일 별세한 황금자 할머니는 임대아파트(10평)에 살면서도 빈 병과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돈 1억원을 장학금으로 서울 강서구청에 기탁했다. 4000만원을 기탁했던 2006년 당시 황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할머니는 한쪽 가스레인지를 일부러 청테이프로 봉해 놓고 사용하지 않았다. 집 형광등은 밤에도 하나만 켰다고 한다. [사진 강서구청]


26일 서울 목동 이대병원 장례식장은 침착하고 고요했다. 입구에는 정·관계 유명인사의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민주당 대표 김한길….

위안부 피해 황금자 할머니
소원 못 이루고 90세로 별세
폐지 모아 1억 장학금 기부
생존자 이제 55명으로 줄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이날 흙으로 돌아갔다. 90세. 저녁이 되자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제법 북적댔지만, 할머니의 피붙이는 없었다. 밤늦도록 장례식장을 지킨 건 연도(煉禱)를 올리는 성당 신도와 사회복지사 여남은 명뿐이었다. 할머니의 구십 평생은 어항 속처럼 침묵과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열세 살 어린 소녀 때였다. 길을 가다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고향인 함경남도 흥남의 한 유리공장으로 끌려갔다. 3년 뒤에는 간도 지방으로 옮겨갔다. 그때부터 일본군들의 더러운 학대를 견뎌야 했다. 해방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에 홀로 떨어졌다.



 할머니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죽는 순간까지 홀로 살았다. 친구도 없었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오래도록 대인기피증을 앓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유일하게 친분을 맺은 이가 있었다. 서울 강서구 사회복지사 김정환(49)씨. 할머니는 김씨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김씨는 할머니의 양아들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2년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병세가 깊어져 환청·환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살던 강서구 등촌3동 임대아파트 옆에는 마포고등학교가 있었다. 할머니는 교복 입은 고등학생을 일본군으로 착각해 구청·주민센터 등에 신고했다. “공무원 양반, 일본군이 날뛰고 있어. 얼른 잡아줘.”



 그때 할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것이 김씨였다. 할머니는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기 위해 김씨가 근무하던 주민센터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두서없었으나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일본에 꼭 사과를 받아야 해.”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는 정부로부터 매달 150만원 남짓 지원금을 받았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곤 모두 저축했다. 필요한 용돈은 폐지를 줍는 일로 충당했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근검절약했다. 평생 홀로 살아온 할머니는 죽음 이후가 불안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저축하려 했다. 한 번은 김씨에게 이런 유언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들아, 내가 죽으면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바꿔 관 안에 꽉꽉 채워줘. 그래야 죽고 난 뒤에도 안심될 것 같구나.”



 김씨는 그런 할머니를 이렇게 설득했다. “어머니, 그러지 말고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학생을 도와주는 건 어때요?”



 할머니가 김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4년 뒤였다. 할머니가 김씨의 손에 이끌려 경기도 파주 하늘묘원에 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흐드러진 봄꽃을 본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에 묻어다오. 그리고 죽기 전에 좋은 일도 하자꾸나.”



 할머니는 그해 11월 강서구장학회에 4000만원을 기부한 뒤 2010년까지 총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할머니가 사후 남긴 임대아파트 보증금 등 5000만원 상당의 재산도 강서구장학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할머니는 생전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 했다. “미안하다.” 일본 정부로부터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할머니는 구십 평생을 기다려온 건지도 몰랐다. 이날 할머니가 떠나면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는 55명으로 줄었다. 일제 만행의 산증거가 해마다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날 할머니의 장례식장 한쪽에선 TV에 이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본 NHK방송의 신임 회장이 한국 출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당시 그런 시설이 어느 나라에나 존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강현·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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