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남해 섬 36년 누빈 그녀, 마도로스 박

‘마도로스 박’ 박미숙씨가 전남지역 섬들을 돌아다니는 병원선 ‘전남511호’ 앞에 섰다. 36년간 배가 난파할 고비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웬만한 파도엔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마도로스 박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선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는 이들은 그를 ‘마도로스 박’이라고 불렀다. 처녀 시절부터 정년 퇴임을 5개월 남긴 지금까지 35년7개월 동안 배를 타고 남해와 서해를 누빈 까닭이었다. 다른 선원도, 함께 배를 타는 의사·간호사도 대선배인 그 앞에선 고분고분했다.

병원선 '전남 511호' 박미숙씨
섬 86곳 순회하며 X선 촬영
환자 찾는 보람에 계속 근무
선장도 항해코스 물어올 정도



 병원선 전남511호(128t)의 방사선사 박미숙(60·보건 6급)씨. 그는 전남 여수·고흥·보성·강진·완도·해남 지역 86개 섬을 돌아다니며 X선 촬영을 한다. 그가 의사·간호사·선원들과 함께 병원선을 타고 의료시설이 없는 섬을 돌기 시작한 건 대학을 갓 졸업한 1978년, 24세 때였다. 가족은 아르헨티나 이민을 가는데 자신은 병원선을 택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이어서인지 바다와 섬을 좋아했지요. 작은 기차역장이었던 아버지처럼 공직 생활을 해보고도 싶었고요.”



 1주일 내내 배를 타고 섬을 돌다 주말에 육지로 돌아오는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게 천직이 됐다. 공중보건의는 1년 병원선을 타면 뭍으로 옮겼다. 간호사는 그보다 길다지만 3~7년이면 역시 육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병원선에 남았다.



 “때마침 병원선이 온 덕에 응급처치를 받아 후유 장애 걱정을 않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배를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죠.”



 30여 년을 돌이켜보면 섬은 정말 많이 변했다고 했다. 70~80년대 병원선은 귀한 손님이었다. 섬 주민들이 생선회를 푸짐하게 올린 밥상에 술까지 내왔다. 섬 주민이 많아 밤 늦게까지 진료하기 일쑤였다. 이에 비해 할아버지·할머니가 대부분인 요즘은 자식 자랑 같은 얘기를 귀담아들어주는 게 중요한 업무가 됐다.



 배가 난파할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약 25년 전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에 갔다가 목포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파도가 심해 배 안에 있는 각종 집기가 쏟아져내려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선장이 거의 배를 포기할 지경이었고, 일부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박씨는 회고했다. 어찌어찌 파도를 피해 무인도에 배를 댔다. 비슷한 일을 몇 차례 겪으면서 웬만한 파도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만큼이 됐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마도로스 박’이다. 전남511호 손병오(59) 선장은 “워낙 이쪽 일을 잘 알아 날씨가 수상하다 싶으면 항해 코스를 박씨와 논의할 정도”라고 말했다.



 병원선 안에서 그는 어머니 같은 역할도 한다. 의사·간호사가 청소 같은 궂은일을 안 하려 들거나 배 안에서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 자주 늦거나 하면 그가 불러 타일렀다.



 “섬 근무를 하겠다는 공중보건의들은 원래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일까요. 타이르면 다들 말을 잘 듣더군요.”



 주방장이 아프거나 휴가를 갔을 때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것 또한 그였다.



 바다에서 사느라 33세에 결혼해 충북 청주에 가정을 꾸려 두 딸을 뒀다. “병원선 생활 때문에 아이들은 사실 시어머님과 남편이 키웠어요.”



 정년 퇴직은 오는 6월 말. 관례대로라면 박씨는 지금 ‘공로 연수’를 떠났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남511호를 타고 섬을 돌고 있다. 전남도가 1년 전부터 후임을 찾았으나 자원이 없어 당분간 계속하기로 했다. “이 일이 아무 문제 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 또한 제 의무지요. 그렇게 해야 36년 생활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 아닐까요.”



여수=이해석 기자



◆병원선(船)=공중보건의와 간호사·방사선사 등이 타고 의료 사각지대인 외딴 섬을 누비며 진료를 한다. 다도해를 끼고 있는 전남에 두 척, 경남과 충남에 각 한 척씩 전부 네 척이 있다. 하루 1~3개 낙도를 순회한다. 진료비는 물론 약값도 받지 않는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