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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나는 지하철에서 관찰·통찰·성찰한다

[일러스트=강일구]


주철환
PD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되죠?” 약속장소 잡을 때마다 내가 묻는 말은 일정하다. 지하철 애용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반응도 얼추 비슷하다. “내려서 좀 걸어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대답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걸으면 운동 되고 좋죠 뭐.”



 선호하는 이동수단은 두 가지다. 걷거나 지하철. 도보로 30분 내외면 걸어서 간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좀 좋은가. 햇살과 바람은 또 얼마나 정다운지. 대학 첫 여름방학 때 개통된 지하철. 올해로 40년차 탑승객이다.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니다. 저렴한 교통비, 약속시간 준수에다 갈아타기 몇 번 하다 보면 칼로리 소모는 덤이다.



 오랜 세월 누리다 보니 특별한 습관도 생겼다. 이어폰으로는 음악을 듣지만 눈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타는 사람, 내리는 사람, 앉은 사람, 서 있는 사람 모두를 유심히 본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할까, 저 어두운 표정의 뿌리는 무엇일까. 감정이입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노하우도 생겼다. 들키지 않도록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남의 얼굴을 왜 그렇게 보세요?” 시비를 당한 경우가 한 차례도 없었던 걸 보면 나의 ‘무표정 연기’도 수준급에 오른 모양이다. (실은 착각이다. 그들은 도통 무관심하다. 내가 보든 말든 그들은 오로지 개인사에 몰두한다.)



 드디어 나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른바 캐스팅 놀이. 이 사람은 이 역에 맞겠다, 저 사람은 그 역에 맞겠다. 지하철 안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고무장갑 파는 사람과 천당 안내인의 동시 입장.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다. 지하철에서 무슨 짓이냐고 힐난한다면 이렇게 해명할 참이다. “사람은 심심할 때 늙는다. 왜 아까운 시간을 죽이는가(킬링 타임). 시간을 살려라(리빙 타임). 지하철은 내게 지하찰(地下察)이다. 거기서 3찰(관찰·통찰·성찰)을 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관찰은 겉을 보는 거지만 통찰(in+sight)은 속을 보는 거다. 성찰은? 나를 보는 거다. 언제부턴가는 지하에 줄곧 머물 텐데 이보다 좋은 예행연습이 있을까.



 지하철에선 광고도 3찰의 대상이다. 요즘 3호선을 타면 이런 광고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영화처럼 살고 싶다면’ 그리고 아래엔 4명의 남녀 얼굴이 있다. 자세히 보면 4명이 아니라 2명이다. 수술 전과 수술 후. 그렇다. 성형외과 유인 카피였던 것이다. 과연 얼굴이 예뻐지면 영화처럼 살 수 있나. 저 광고를 만든 이는 영화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염두에 두기나 했을까. 로맨스, 판타지도 있지만 공포, 재난의 영화가 오죽 많은가.



 영화처럼 살고 싶다면 압구정역 몇 번 출구로 나오라고 광고는 친절하게 안내한다. 광고 밑에 조그맣게 써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얼굴을 바꾸는 것보다 마음을 바꾸는 게 유익하다. 행복의 출구는 압구정에 있는 게 아니라 네 마음에 있다.”



주철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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