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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마키아벨리에게 '통일 대박론'을 묻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u).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지도자와 나라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꼽은 두 가지 요소다. 우리말로는 운세에 해당할 포르투나는 강물처럼 두 얼굴을 지녔다. 평소에는 유용하지만 홍수가 나면 재앙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는 군주에게 운세를 잘 다루는 비르투, 곧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흔히 비르투를 남성적 용맹성으로 번역하지만, 깊게 들어가자면 정치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지도자의 힘과 지혜, 덕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통일에 대한 논의가 쏟아진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2015년 통일 전망’에 이어 한 일간지는 ‘통일은 미래다’라는 연중 캠페인에 착수했다.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 22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개막연설에서도 박 대통령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통일은 한국에만 대박이 아니라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도 대박이 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그동안 사그라져 가던 통일 담론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따져봐야 할 대목 역시 적지 않다.



 ‘대박’의 사전적 의미는 ‘운 좋게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뒤집어 말해 통일 대박론의 요체는 운이다. 대박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쪽박을 차게 만들 수도 있다. 단순히 운세에 맡겨서는 안 되며 지도자의 전략과 의지로 신중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마키아벨리식으로 말하자면, 2014년의 통일 논의는 포르투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반면 정작 필요한 비르투는 간과하고 있다.



 우선 어떤 통일인지 규정하지 않고 ‘통일 대박’을 거론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통일은 단일민족국가, 연방제, 스위스식의 낮은 단계 연방제(confederation)까지 여러 형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남북한 중 어느 하나는 주권을 잃게 되지만, 아예 유럽연합처럼 남북이 각자 주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의 국가연합을 모색할 수도 있다. 그간 한국 정부는 남북 화해협력을 증진하고, 중간단계로서의 남북연합을 구축한 다음, 궁극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주권국가를 만드는 통일방안을 상정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통일 논의에는 이러한 과정이 빠진 채 단순히 통일의 장밋빛 결과만을 부각한다. 심각한 구체성의 오류다.



 방식도 문제다. 통일로 가는 길 역시 다양하다. 독일식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베트남 같은 무력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이 협의와 합의를 통해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길도 있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남북의 적대적 분단이 오래 이어지면 북한이 중국의 경제적 신탁통치하에 놓여 통일은 한참 뒤로 밀리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이렇듯 시나리오마다 대박론의 근거가 되는 통일의 비용과 편익은 크게 달라진다. 무력과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남북 모두 깨진 쪽박을 피할 수 없다. 흡수통일도 대박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었듯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뒤이은 흡수통일은 한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은 아마도 중국의 영향력 아래서 북한 경제가 정상화된 후에 남과 북이 합의통일을 이루는 방식이겠지만, 이는 우리 정서상 수용하기 쉽지 않고 영구분단의 가능성마저 있다.



 이렇게 보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경제 분야의 교류협력을 필두로 한 합의형 통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다분히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에 방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최소한 평양이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통일 대박론을 ‘흡수통일 망상’이라고 폄하하는 북한 당국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통일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위정자와 주민이라는 상대가 있다. 그들과의 교감이나 협의 없이 건설적인 통일은 불가능하다. 마침 평양이 우리 측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수용하고 나선 것은 그야말로 기회다. 이를 계기로 꼬일 대로 꼬인 현재 상황을 풀어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경계와 응징의 자세를 늦추지 않되, 북측의 행보를 신뢰구축이나 긴장해소, 북핵 문제 해결로 이끌어내야 통일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경천동지의 새롭고 창의적인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남북이 그간 맺어온 합의를 재검토하고 실천방안을 찾는 작업만으로도 얼마든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통일 대박론이 국내정치적 효과를 노린 한탕주의 흥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강물을 다스리는 철저한 준비와 고민의 비르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500년 전의 이탈리아 사상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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