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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송림수제화 대를 잇는 장인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선이야기 삶이야기’ <41>



현재 우주항공 관련 엔지니어링 컨설팅(자문)과 러시아어 통번역을 하는 김명철(45)씨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로 같은 곳인 대퇴부가 2번이나 골절됐다. 그때 병원의 잘못으로 왼쪽 다리가 휘게 되어 안짱다리처럼 6㎝나 짧아졌다. 당시 의료보조 구두를 신었지만 무겁고 두터워 뛰면 바로 창이 떨어져서 계속 신기가 어려웠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91년 말 옆집 이웃 아저씨가 을지로의 송림수제화를 소개해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가볍고 튼튼하며 발목까지 안전하게 감싸주는 신발을 신게 되면서 처음으로 운동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알아챌 수 없게 왼쪽 신발만 키다리 구두처럼 속으로 6㎝를 높여줘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또 신발 바깥쪽을 안쪽보다 높게 만들어 허리통증도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발이 성장하고 신체가 변해도 그에 맞는 신발을 만들 수가 있었다.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를 돌 때도 정장에 맞는 구두와 다니기 편한 등산화가 필요했는데 위는 구두화, 밑창은 등산화로 만들어 발이 무척 편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은 것이 무척 감사하면서도 자신을 송림수제화의 나쁜 고객이라고 말한다. 20년 넘게 찾는 단골이지만, 한번 신으면 적어도 5~6년 이상이어서 많이 팔아주지도 않았다. 소개도 꼭 필요하거나 절실한 사람한테만 해줬다. 가격이나 모양을 따지지 않고 편안함과 건강을 추구하는 이들은 모두 만족했다. 2대 사장이 마지막으로 해준 신발을 7년째 신고 있는 그는 최근 3대 사장으로부터 새 신발을 맞추고는 7년을 신어본 후 두 분의 실력을 비교해 보겠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신발을 아직도 놔두고 가끔 신는다는 그는 그동안 관심은 뒀지만, 엄두도 못 내던 모터사이클에 2001년부터 취미를 붙이게 된다.



끊임없이 신소재가 개발되고 제조하는 도구나 기계도 바뀐다. 그래도 송림수제화의 4대를 잇는 장인들은 전통기술을 익히고 그것에 기반을 둬 신기술을 만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과 기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김명철씨만이 아닐 것이다. “나같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계속 있을 것이니 이 제화점이 사라질까 두렵다”는 그의 말에서 절실함과 고마움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는 빈티지 문화가 없다. 얼마 전 어느 박물관에서 현대자동차의 첫 모델을 구하는데 매우 애를 먹었다. 결국, 외국에서 다시 수입해 왔다고 한다. 100년 이상 된 물건만 골동품이나 문화재로 인정받는 사회는 이상하다. 50년도 안 됐지만, 그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있는 한 그 어느 문화재보다도 소중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송림수제화에 전시된 구두 가운데는 20~30년 전 것뿐만 아니라 80년이 다 된 신발까지 있다. 여기가 바로 토털 제화 즉 구두 박물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근현대생활문화조사의 하나로 4대째 구두 장인의 맥을 이어가는 송림수제화 등을 조사하고 있다.



galmun@hanmail.net 페이스북 www.facebook.com/hadogy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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