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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불러주는 거 나에겐 영광이지만 후배 빼고 절대 못 가

23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훈련장에서 만난 박지성은 김민지 SBS 아나운서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었다. 박지성은 “월드컵이 열리는 6월에 결혼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5월이나 7월에 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벌써 3년 전 이야기가 됐다. 2011년 1월 박지성(33·에인트호번)이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며 아시안컵 본선 직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팬들과 축구계 선후배들은 “이제 할 만큼 했고 지칠 때도 됐다”고 그의 은퇴를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한국 축구가 위기에 처하면 박지성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슴 한구석에 남겨뒀다. 조광래·최강희에 이어 홍명보 감독까지 후임 국가대표 사령탑마다 그의 복귀를 타진했던 이유다. 특히 최근 홍 감독이 “박지성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박지성의 대표 복귀가 커다란 이슈가 됐다.

 중앙일보는 23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디헤르트강 훈련장에서 박지성을 만났다. 그는 “A대표팀 복귀는 없다”며 “이 시점에 내 이름이 거론되는 게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때문에 열심히 뛴 후배 한 명이 월드컵 엔트리에서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선 진출에 기여한 선수가 브라질행 비행기에 오르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박지성(左), 결혼 예정 김민지(右)
 - 대표팀 복귀 논란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명쾌하게 입장을 밝힐 수 있나.

 “지금까지 말해왔던 그대로다. 내가 대표팀 복귀와 관련해 어떤 가능성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었나. 가능성은 0%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99.9999%라고 쓰지도 말아달라.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다.”

 - 홍명보 감독이 ‘직접 만나서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대표팀 복귀가 이슈가 됐다.

 “선수로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은퇴를 했는데도 돌아와주길 바란다는 건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이 시점에 내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게 대표팀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본선 티켓을 따기 위해 헌신한 선수들이 있는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해서 고생했던 누군가가 탈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대표팀이 철저히 월드컵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다. 지난 3년간 뛰지 않았던 선수가 뒤늦게 합류하면서 대표팀에 영향을 주는 건 좋지 않다.”

 - ‘선수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던 홍명보 감독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이유가 있나.

 “미디어에서 내 이름이 너무 자주 거론됐기 때문이 아닐까. (홍)명보 형이 나와 관련한 논란을 빨리 매듭짓는 게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

 - 감독과 만나기도 전에 부친이 먼저 ‘복귀 불가’ 원칙을 공개한 이유는.

 “사실 내 입장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명보 형도 나를 설득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저 내 의사를 물어보겠다는 것뿐인데, 일부 언론이 이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불필요한 논란이 생겼다. 아버지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계셨다.”

 - 월드컵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용의는 있나.

 “물론이다. 지금도 유럽에 나와 있는 선수들과 종종 연락한다. 대표팀 유니폼을 다시 입고 브라질에서 뛰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성심껏 돕겠다. 이 시점에 후배들이 월드컵을 위해 뭔가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던 그대로,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부상 없이 소속팀 일정을 소화하는 게 대표팀에 기여하는 일이다.”

 -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두세 가지 키워드로 조언을 한다면.

 “첫 번째는 부상 방지다. 가장 중요하다. 실력이 뛰어나도 다치면 월드컵에 나갈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컨디션 유지다. 남은 기간 동안 경기력이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강조하고 싶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 홍명보 감독이 직접 만난 자리에서 대표팀 복귀를 간곡히 요청하면 진지하게 한 번 더 고민할 의사가 있나.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가정해 힘겨운 고민을 거쳐 은퇴를 결정했다. 쉽게 바꿀 결정이었다면 은퇴를 선언할 당시에 힘겨운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죽음의 조에 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쉬운 상대만 골라서 만날 순 없다. 본선에 오른 32팀을 실력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눴을 때 한국을 강팀 쪽으로 분류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죽음의 조’가 아닌 이상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

 - 브라질 월드컵 때문에 올해 박지성 자선경기에는 대표 선수 출전이 어려워 보인다.

 “맞다. 하지만 자선 경기 컨셉트를 바꿀 생각은 없다. 외국 선수를 섭외하고 국내의 유망주들 위주로 팀을 준비하고 있다.”

 - 향후 자선경기를 국내에서 치를 계획은 없나.

 “요청하시는 분은 많다. 일단 ‘자선경기’라는 컨셉트를 계속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은퇴 이후에는 다른 형태의 사업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다. 자선경기를 몇 번 치러보니 정말 힘들었다. 자선경기를 10년 넘게 하고 있는 명보 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 2005년 이후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생활은 어떤가.

 “너무 편하다. 환경이 모두 그대로라 따로 적응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8년 전에는 팬들이 나를 싫어해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참 힘들었다(웃음).”

 - AC밀란 등 유럽 빅리그 강호와 대등하게 싸웠던 과거에 달리 현재 에인트호번 선수단은 전체적으로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가나.

 “일부러 이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게 리더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일을 충실히 하고 동료에게 모범을 보이려 애쓴다. 때로는 경기장에서 동료에게 조언을 할 때도 있지만, 가급적 나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동료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한다.”

 - 대표팀 주장 시절에 보여준 리더십과 지금 에인트호번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팀에서도 여기서도 결국은 솔선수범이 정답인 것 같다. 대표팀에서는 의사소통도 문제가 없고 문화도 익숙해서 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역대 대표팀 주장을 꾸준히 봤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 대표팀에 베테랑이 없어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크다.

 “결정적이지 않더라도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경험이 없어도 경기를 풀어가는 데 문제는 없다. 다만 경기의 흐름이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는 ‘경험의 차이’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 부분은 명보 형이 대비책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 대표팀 복귀 못지않게 올 시즌 이후 거취를 주목하는 팬도 많은데.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원칙적으로는 퀸스파크 레인저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남을 수도, 다시 다른 팀으로 갈 수도, 또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정확한 건 올 시즌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 내 몸 상태와 앞으로의 활동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겠다.”

 -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K리그와 함께할 가능성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만 길어야 2015년까지 선수 생활을 할 것이기 때문에 K리그로 가게 된다면 올 시즌을 마친 직후가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 대표팀에 복귀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 외 나머지 것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

에인트호번(네덜란드)=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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