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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처럼 …'아랍의 봄' 틈타 돌아온 알카에다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돌아왔다.



빈 라덴 사살 3년 오히려 세 확장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지 3년, 지도자를 잃으면 와해되곤 하는 여타 조직과 달리 알카에다는 오히려 몸집을 불리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진격 중(on the march)인 알카에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다 죽은 줄 알았던 알카에다가 살아났다”(랜드연구소 앤디 리프먼 연구원)고 한 게 지난 9월이었다. 불과 석 달여 사이에도 달라진 것이다. FT는 “지금처럼 알카에다의 영역이 넓었던 적도, 사람과 재원이 충분했던 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알카에다는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와 시리아·레바논인 레반트 지역, 예멘에 이라크까지 넘보고 있다.



지도부 지휘 공백, 지역 조직이 메워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반군들을 태운 차량 행렬이 지난 7일(현지시간) 이라크 안바르주를 지나고 있다. ISIL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2011년 말 이후 세력을 확장해 지난 4일에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바로 옆 팔루자와 라마디를 점령했다. 무장 병력 1만2000명(추정)을 거느린 ISIL은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안바르 AP=뉴스1]▷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빈 라덴 시절과 다른 모습이긴 하다. 더 이상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중앙지도부는 약해졌다. 대신 프랜차이즈와 같은 형태로 번성했다. 테러 전문가들은 목이 잘려도 그 자리에 새로운 목이 자라나는 히드라에 비유한다. 리프먼 연구원은 ‘지하드 히드라’라 일컬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근거를 둔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와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IS), 예멘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 등이 대표적이다. 안사르 알샤리아(리비아), 보코하람(나이지리아), 안사르 알딘(말리), 알샤바브(소말리아), 알누스라(이라크) 등도 있다.



 이들의 ‘역량’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가 이달 ISIS의 이라크 팔루자 점령이다. 팔루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로부터 불과 70㎞ 떨어진 곳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몰아내고 점령했던 곳이기도 하다. 2012년엔 안사르 알딘이 말리의 북부를 점령한 데 이어 수도인 바마코까지 장악할 뻔했다. 소말리아에선 알샤바브가 사실상 여러 지역을 통제하고 있다. 곳곳에서 테러도 자행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알제리에서 인 아메나스 가스전 인질극을 벌인 건 AQIM의 산하 단체였다. 같은 해 9월 케냐의 웨스트케이트 쇼핑몰 폭탄테러는 알샤바브, 8월 나이지리아 대학 기숙사에 총기를 난사한 건 보코하람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이러니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미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하원 정보위 의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15일 열린 알카에다 부활과 관련한 조사 청문회에서 “알카에다의 종말은 거짓”이라며 “진정한 종말을 위해선 드론 공격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카에다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치명적으로 상처 입은 적일 뿐” “이질적 세력들의 이합집산이며 궁극적으로 지역 중심”이란 주장들은 이제 소수론으로 밀려나고 있다.



 알카에다의 ‘르네상스’는 몇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란 분석이다.



 우선 ‘아랍의 봄’을 불러왔던 각국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몰락 이후 정정이 불안해진 리비아에서 군수품이 쏟아져 나와 알카에다 연계 세력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라크의 사실상 해체도, 시리아의 혼란도 알카에다에는 기름진 토양이 됐다.



토착민과 결혼, 재정 지원 ‘현지화 전략’



 서방, 특히 미국의 존재는 양날의 칼이 되곤 했다. 드론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알카에다 지도부가 사실상 와해되긴 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로 인해 커진 이슬람의 반감은 알카에다엔 ‘자양분’이 되곤 했다.



 반전은 또 있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와 서방 사회의 시리아 내전 무장개입 주저 등이 맞물리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그것을 무장단체들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알카에다도 그들 중 하나다. 여기에 고질적인 종파 갈등까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알카에다와 오랫동안 싸워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에 맞서기 위해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누스라에 돈을 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알카에다의 자체 노력도 있다. 조직을 분산하고 아래로부터 변화를 모색했다. 토착민과의 결혼 등 현지화 전략도 구사했다. FT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재력과 각종 지원을 내세워 부족 지도자의 환심을 산 뒤 현지인과 결혼해 시스템에 침투했다”고 분석했다. 예멘도 그런 경우인데 알카에다 총책 나시르 알 우하이시의 지도력 아래 부족민과 쌓은 유대감이 조직 확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일종의 여론전도 했다. 무함마드 나세르 아흐메드 예멘 국방장관을 겨냥한 차량 폭탄 테러로 무고한 시민 50여 명이 숨진 걸 두고 AQAP의 한 지도자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한다. 잘못했다”는 사과 성명을 냈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리아서 훈련 유럽인에게 “고국 공격”



 서방 사회는 테러 유입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내무장관은 19일 “10여 명의 프랑스 미성년자들이 시리아에 갔거나 가기를 원했다”며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알카에다 망명자의 말을 인용해 “알카에다가 시리아에서 훈련시킨 영국 등 유럽 출신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 공격하라고 꼬드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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