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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여론조사까지 의사협회 입맛에 맞추나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누구라도 쉽게 믿을 수는 없는 결과였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의료영리화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얘기다. 의협은 이날 국민 1500명에게 물어본 결과 “국민의 93%가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같은 의료영리화 정책이 아니라 공공성 강화를 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의협이 3월 3일 예고한 총파업(집단휴진)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에 안성맞춤인 조사 결과였다.



 설마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뭔가 미심쩍었다. 그런데 의협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기관이 한국갤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한국갤럽이 어떤 회사인가. 국내에서 처음 선거 예측 조사결과를 발표한 글로벌 여론조사 전문기관이다. 그게 국민 여론이겠거니 하고 믿을 정도다.



 의협에 설문조사 원본을 요청했다. 한국갤럽이 의협에 보낸 13장 분량의 통계표에는 12가지 문답이 담겨 있었다.



 질문을 살펴봤다. 1번 질문은 이랬다. “핸드폰을 활용한 진료의 경우 오진 등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동의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으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하기 쉽지 않다. 이미 위험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어서다. 75%가 ‘동의한다’에 체크했다. 다음 질문은 “병의원이 가까워서 의사와 직접 대면진료가 가능한 경우에도 핸드폰 등을 활용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이다. “필요 없다”가 68%다. 설문 문항 자체가 ‘원격진료는 위험한 데다 병의원이 (집) 가까이에 많은데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의 타당성을 묻는 질문도 부정적인 답변을 유도했다.



 서울대 이준웅(언론정보학) 교수는 “제대로 된 여론조사라면 원격의료의 장점을 같이 묻거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한 뒤 찬반을 물어야 한다”며 “여론조사를 진행한 기관이 의뢰하는 쪽에 맞추다 보니 편파적인 문항을 배제하지 못하고 조정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의협이야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싶어서 무리수를 뒀다고 치자. 하지만 국내 최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까지 의뢰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여론조사의 ‘ABC’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여론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면 이를 수정했어야 한다. 이 회사 담당자는 “의뢰를 받은 쪽이기 때문에 의견을 낼 여지가 별로 없었고, 의협 내부적으로 쓰는 자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은 홈페이지에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을 가장 잘 아는 기관”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의 마음이 아니라 의뢰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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