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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30년 한국 담당 일본 외교관이 나를 오싹하게 한 진짜 이유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영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자 문득 모티브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가 한창이던 1987년 6월항쟁 당시 부산역 광장에서였다. 서울의 민주화 성지가 명동성당이었다면 부산은 부산역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국제사면위원회 부산지부장 출신인 지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 고 김광일 변호사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결성됐는데 당시 41세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도 함께했다.



 당시 역 인근 방송사로 향하던 시위대가 도중에 있는 주(駐)부산 일본영사관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병은 영사관 담 구실을 하던 축대 위쪽, 정원수 아래에 깨지지 않은 채 떨어졌다. 불꽃이 계속 타올라 나무에 옮겨붙을 아찔한 지경이 됐다. 그러자 한 남자가 “외교공관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축대 위에 올라가 이를 걷어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해묵은 기억이 되살아난 건 서울 주재 일본외교관과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마침 부산 이야기가 나와 이 일화를 꺼냈더니 자신이 바로 그때 영사관에 근무 중이었다고 했다. “별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한다”며 서로 씩 웃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그는 무려 30년 가까이 한반도를 맡아왔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전문가 양성 방침 때문이라고 한다. 오싹했다.



 한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일본에는 수십 년 경력의 한반도나 중국 전문가가 수두룩하다”며 “나는 30년이 넘는 경력 중 일본에 8년간 있었지만 상대 측 전문인력을 만날 때마다 두렵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일관계가 꼬이고 한·중관계가 어려우며 한·미관계가 막중할수록 상대국 사정과 인맥을 두루 꿰면서 국익을 위해 이를 활용하는 전문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원래 공무원은 매뉴얼을 잘 따르지도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은 편인데 일본 외교관을 만나보면 매뉴얼대로 하면서도 창의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며 “‘일본 사회는 우리가 움직인다’는 자부심이 그 원천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인재를 키우려면 긴 세월에 걸쳐 전문성은 물론, 자부심도 북돋워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30년 정도 외길을 걸으며 크고 작은 기억과 노하우를 시시콜콜 머릿속에 담아 상대를 오싹하게 할 외교전문가가 얼마나 될까. 답답한 한·일관계를 보면서 ‘인재양성’이라는 네 글자의 무게를 실감한다. 지금이라도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이런 일을 미래에 또 겪게 될지 누가 알겠나.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사 갈 수도 없지 않으냐”라는 언론계 원로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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