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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아동 성추행, 세속 심판대 세운 교황

스위스 제네바에서 16일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교황청 대표로 시바노 토마시 대주교(왼쪽)와 몬시뇰 찰스 스치클루나 등이 참석했다. 토마시 대주교는 유엔 상임옵서버이며 몬시뇰 스치클루나는 지난해까지 성추문 조사를 담당했다. [제네바 AP=뉴시스]

“예전에도 엄격했지만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으로 불리던 200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아동 성추행 성직자 처벌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교황 프란치스코』). 이제 교황은 자신의 답변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2009년 당시 아르헨티나는 에르드라르도 스토르니 가톨릭 주교의 성추행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스토르니 주교는 8년형을 선고받았다.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이 처음 공개적으로 불거진 건 1985년이었다. 미국 루이지애나의 길버트 고드 신부가 74년부터 83년까지 교구 내에 수백 명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0년형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사제 개인의 일탈로 여겨졌다. 그러다 2002년 미국 보스턴 대교구의 존 지오간 신부 사건이 터졌다. 10세 어린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는 과정에서 그가 30년간 130명의 어린이를 괴롭힌 사실이 드러났다. 보스턴 대교구의 버나드 로 추기경이 지오간 신부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새로운 교구로 이동시키는 조치만 취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16일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교황청 대표로 시바노 토마시 대주교(왼쪽)와 몬시뇰 찰스 스
치클루나 등이 참석했다. 토마시 대주교는 유엔 상임옵서버이며 몬시뇰 스치클루나는 지난해까지 성추문 조사를 담당했다. [제네바 AP=뉴시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게 비판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미국 내 문제’란 교황청의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추행 추문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 썼고 예상은 적중했다.

 2009년 11월 아일랜드 정부조사단이 더블린 가톨릭 교회의 아동 성추행 보고서를 냈다. 1975~2004년까지 320건의 성적 학대 피해사례를 조사했더니 45명의 신부가 성추행과 관련됐으나 유죄판결을 받은 건 11명에 그친다는 내용이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낀다고 했다.

 불똥은 그러나 곧 교황 자신에게도 튀었다. 이듬해 독일 베를린 예수회 학교 졸업생 7명이 재학 시절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 소년성가대에서도 성적 학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의 성가대는 교황의 형인 게오르그 라칭어 신부가 한때 이끌던 곳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문제들이 터졌다. 교황청 스스로 “지난 50년간 가톨릭 사제의 1.5~5%가 성추행 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을 정도였다. 관련 소송이 급증했고 피해보상금도 치솟았다. AP통신은 “1950년부터 2007년까지 보상금이 20억 달러(약 21조원)가 넘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8개 교구가 이 때문에 파산을 선언하기도 했다.

 사제들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토로하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소극적이었다. 특히 교황청이 그랬다. 가톨릭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아동 성추행 문제는 베네딕토 16세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였지만 그가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지난해 말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토록 했다. 16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 토마시 대주교 등 고위 성직자 5명을 출석하도록 했다. 성직자들의 발언이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이 있지만 교황청이 그간의 은폐를 접고 세속의 심판대에 섰다는 사실을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16일 미사에선 교황 자신이 이례적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많은 추문이 있었다. 일일이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모두 안다. 어디서 일어났는지도 안다. 교회의 수치다. (하느님이 준) 지위와 안락함을 누렸지만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없었다.”

 그러곤 자책했다. “불쌍한 사람들. 우린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지 못했다. 진리를 주지도 못했다. 대신 너무나도 자주 독이 든 음식을 줬다.”

 몬시뇰 찰스 스치클루나 보좌주교는 “현 교황이 자비로운 성품이지만 아동 성추행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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