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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8년 뒤 밝혀진 살인교사, 일사부재리로 처벌 못해

2003년 10월. 대처승이었던 박모(51)씨는 경기도 동두천의 한 절에 주지승으로 있었다. 그러던 중 절 인근에서 박씨의 부인 조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평소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던 박씨와 행자승 김모(46)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김씨로부터 “주지승 박씨가 자신에게 부인을 죽이라고 시켰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박씨에겐 살인교사, 김씨에겐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재판 결과 김씨는 2004년 8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똑같이 15년을 선고받은 박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결국 박씨는 2005년 4월 파기환송심에서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직접 증거인 행자승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없고, 살해를 교사할 동기가 없다”고 판단했다.

 묻혀질 뻔했던 범행은 7년 뒤 결정적인 단서가 잡히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박씨가 부인이 살해되기 약 6개월 전 부인 명의로 대형 보험회사 3곳과 종신보험을 계약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보험청약서에는 부인이 자연사가 아닌 사건·사고로 사망했을 때 보험금을 최대 3배까지 받을 수 있는 특약까지 설정돼 있었다. 박씨는 2005년 4월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무죄가 확정되자 보험회사 3곳으로부터 8억원을 받아냈다.

 한 보험사 직원이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경찰청 장기미제강력사건 전담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수사팀은 보험자료를 검토하면서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 죽은 부인 조씨는 남편의 내연녀로 의심되는 명단을 적어놓았다. 그런데 보험청약서에 남겨진 조씨의 연락처가 그가 죽기 전 남편의 내연녀로 지목한 한 여성의 연락처와 똑같았던 것이다.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두 달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수사 결과 박씨는 2003년 3~4월 내연녀 김모(43)씨를 부인 조씨로 위장해 부인 명의의 종신 보험에 가입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검찰은 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앞서 무죄로 판결 난 살인교사 혐의는 제외했다. 한 번 확정된 사건은 다시 심리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 때문이었다. 박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중에도 행자승 김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험금을 부인이 냈다”고 위증한 혐의까지 더해졌다. 1심은 사기·위증죄로 박씨에게 징역 7년5개월을, 2심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형량이 과중하다”며 상고했지만 최근 대법원은 원심 형량대로 확정했다. 양형 기준상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의 권고형량은 징역 2년8월에서 7년5월 사이다. 이 가운데 상한에 가까운 형을 선고한 것이다. 부인을 살해하라고 시킨 혐의가 인정되는데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한 양형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좋지 않은 데다 8억원이라는 거액을 가로채고도 전혀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점 등 피고인을 엄벌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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