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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간 퇴근 김 대리, 일도 훨씬 잘하죠


SK이노베이션의 김우경(35) 부장은 만 2세 아이를 둔 직장맘이다. 보육 문제로 골치를 앓을 때다. 여느 직장맘 같으면 출퇴근 때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이 만만찮아서다.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김 부장은 다른 직장맘에 비해 느긋하다. 30분 늦게 출퇴근하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러시아워(혼잡한 출퇴근 시간)를 피할 수 있어 쫓기지 않아 좋다”고 했다. 근로자가 마음대로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플렉서블(Flexible) 타임제’ 덕택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퇴근은 약속된 근무시간에서 30분 이상 넘기면 안 된다. 그때부턴 무조건 초과근무로 기록된다. 초과근무자가 나오면 회사가 팀장과 실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SK그룹의 전 계열사에 이런 형태의 ‘초과근무 제로’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SK루브리컨츠 기유사업팀의 전현정 사원은 퇴근 후 살사와 수영을 배우고, SK이노베이션 탐사사업관리팀의 정태훈 대리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SK텔레콤 이승렬 부장은 “직원들의 가치가 회사 중심에서 일과 삶의 조화로 옮겨졌다”며 “애사심과 생산성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에 선진국형 ‘일과 삶의 균형(WLB, Work-Life Balance) 근무제’가 확산되고 있다. 근로시간(양)보다 근로의 질(성과)을 우선시하는 인력관리(HRM) 시스템이다. 일·가정·개인의 삶을 조화롭게 즐기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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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은 다양하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제도가 있는가 하면 근로자의 재충전과 육아에 비중을 둔 조치도 있다.

 자유출근제를 시행하는 삼성전자의 업무 풍속도는 여느 직장과 크게 다르다. 아침에 학원에 가거나 평일 오전에 전시회와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출근하는 직원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오후 7시) PC를 강제로 끈다.

 현대카드는 2003년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배낭여행 프로그램(Insight Trip)을 운영 중이다. 한 달에 한 팀을 선정해 무작정 여행을 보낸다. 직원끼리 소통이 원활해지는 것은 물론 업무에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아예 장기 휴가를 의무화한 곳도 있다. S-Oil은 전 임직원이 2주 이상 연속 휴가를 사용케 했다. 관리직이 휴가를 가면 다른 부서장이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 맘 편하게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라는 것이다. 한화케미컬도 연차휴가를 10일간 붙여서 사용토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는 직원에겐 호텔 이용권을 주는 당근책이 주어지고, 안 쓰면 연말평가 때 팀장에게 그 책임이 돌아간다.

 WLB는 선진국에선 보편화돼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1970년대 중반부터 유연한 근무제를 법으로 권했다. 성과만 담보된다면 근로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도록 함으로써 육아부담을 덜고, 장년층의 일자리 창출까지 꾀하는 조치다. 미국 빌 클린턴 정부는 97년 5월 ‘가정친화적 기업에 대한 제안’을 발표했다. 휴가·육아·근로시간의 조화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IBM은 97년 여성리더십위원회를 발족해 50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육아와 근로의 병행에 방점을 둔 인사정책을 추진했다. 위원회 발족 당시 185명이던 여성 임원은 2002년 674명으로 늘었다. 영국의 노조는 2000년 집중근무제와 근무시간 바꾸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유연 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세대 이지만(경영학)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WLB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35개국 중 33위다. 10점 만점에 5.4점으로 1위인 덴마크(9.8점)의 절반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늘려 생산성을 끌어올리던 시대는 지났다”며 “창의에 기반을 둔 업무가 경쟁을 주도하는 지금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근로문화가 한층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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