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일워’ 인터넷 정화 표방 … ‘일베’ 공격에 점점 거친 대응

“좌파사이트 산업화시키자 (지금 분탕 홍어새X들이 좌표 찍고 ㅁㅈㅎ)” (일간베스트 닉네임 슨△△△△△△)

“아침부터 벌레들이 파브르르르르떠농ㅋㅋㅋ 이 글 보고 그냥 농약 맞기 전에 꺼지라” (일간워스트 닉네임 류○○)

지난해 12월28일 ‘일간워스트(일워·www.ilwar.com)’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극우성향 인터넷 게시판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www.ilbe.com)’를 패러디한 사이트다. 개설 당시에는 ‘일베와는 다른 청정구역’을 표방했다. 패륜적 게시물과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롱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일베’에 맞서겠다는 의도였다.

‘일워’가 개설된 지 20여 일이 지난 17일, 과연 게시판은 이들의 의도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개설 초기 ‘일워’ 등장 소식을 들은 ‘일베’ 회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사이트에 악성 코드를 심거나 게시판에 욕설을 퍼붓는 일도 잦아졌다.

비교적 점잖던 ‘일워’ 게시판에서 조롱과 비아냥 섞인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었다. ‘일베’ 회원들을 벌레(일베충)라 부르며 비하하거나 박정희·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롱 글이 올라왔다.

‘찢어죽일 쥐새끼’(닉네임 송△△△△)라는 제목의 글에선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국고를 완전 아작을 낸 찢어죽일 ×!’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대통령’(닉네임 파○○○)이라는 글에선 박 대통령에 대해 ‘ㅋㅋㅋ해외여행 하려고 대통령 된 거 아냐? 라는 생각 들었닭ㅋㅋ’라는 댓글이 달렸다.

개설 초기 ‘일베’의 일탈적 인터넷 문화에 비판적인 네티즌들이 ‘일워’에 많이 가입했다. 하지만 ‘일워’ 역시 비슷한 일탈로 얼룩지면서 실망했다는 회원들도 나온다. 이달 초 ‘일워’에 가입했던 회사원 김모(39)씨는 “정치적 성향만 다를 뿐, 일탈적 행태는 비슷해지는 것 같다. 결국 ‘일워’도 ‘일베’라는 거울의 뒷면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워’의 구성은 ‘일베’와 유사하다. ‘정치사회’ 게시판(일워 유저들은 게시판을 ‘밭’이라고 부른다)을 비롯해 주제별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들과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을 모아 놓은 ‘대풍작’ 게시판이 있다. 게시물에 대한 찬반 의견을 클릭할 수 있는 것도 똑같다. ‘일베’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조롱하는 의미로 반대 의견을 ‘민주화’한다고 표현하는 반면, ‘일워’에서는 산업화 세대를 조롱하는 뜻에서 반대 의견을 ‘산업화’라고 부른다.

사이트 내에서만 통용되는 특유의 문체가 있는 것도 비슷하다. ‘일워’ 유저들은 스스로를 ‘농부’라 부른다. ‘일베’ 회원들을 해충에 빗대 이들을 박멸하겠다는 의미다. ‘일베’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하는 ‘~했노(盧)’체 대신 ‘일워’에서는 말끝마다 ‘~했농(農)’체를 사용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꼬는 의미(닭근혜)로 ‘~하닭’ ‘~하계(鷄)’체를 쓰기도 한다.

‘일워’ 개설자 이준행(29)씨는 ‘충격고로케(hot.coroke.net)’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온라인 뉴스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충격’ ‘헉’ ‘~더니 결국’ 등 선정적 제목을 골라 언론사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이씨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트위터리안이 좌파성향 사이트를 만들어 비추(반대) 버튼을 ‘민영화’로 하자’고 올린 트윗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일워’를 만들었다”며 “‘일베’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려 했다기보다 ‘일베’의 개념(형식)을 가져다 쓴 것 뿐인데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반(反)일베 성격이 됐다”고 말했다.

‘일베’도 처음에는 우리나라 인터넷 게시판의 원조 격인 ‘디시인사이드’의 재미있는 게시글만 모아 둔 게시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극우성향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호남 출신 여성 연예인에 대한 욕설 글이 올라왔다가 작성자가 해당 연예인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군에게 몸을 판 창녀’로 묘사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의 시신을 ‘홍어(호남 출신을 비하하는 표현)’라 표현해 ‘패륜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익명 인터넷 게시판에서 비아냥과 조롱이 난무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상적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계명대 사회학과 임운택 교수는 “기성세대가 만든 이념 프레임 안에서 일탈과 비규범이 심화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공론의 장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 실업 등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공간이 거대한 ‘배설의 장’이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도 “정치판의 저열한 대결 양상이 온라인으로 번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결국 온라인 익명 게시판은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대결 양상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워’ 내부에서 자정(自淨)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워’ 개설자 이준행씨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자유로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조선시대 광대가 그러했듯 조롱도 허용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죽음에 대한 능욕’은 인류라면 어디서나 금기시되는 선입니다”라고 했다.

건전한 비판과 일탈적 비난을 구분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실제로 초기 ‘일워’ 게시판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을 ‘재규했다’는 표현으로 바꿔 불렀었다.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일베’ 회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자살을 ‘운지했다’란 표현으로 조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담긴 TV 광고에 나오는 건강제품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자정’ 목소리가 나오면서 최근엔 이런 표현들이 줄어들고 있다.

개설된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은 ‘일워’가 당초 의도대로 ‘인터넷 청정구역’이 될지, 아니면 ‘일베’와 같은 일탈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회원 수가 늘고 내부의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판단할 문제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