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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고치고, 깔아뭉개고 … 국회의원 위에 군림하는 ‘수퍼 甲 ’

# “국회가 이렇게 운영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법이 우리 정무위원회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키고 논의하고 고민해서 통과시킨 건데 이걸 법사위에서 뚝딱 내용을 완전히 바꿔버리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그럼 정무위원회는 뭡니까.”

지난해 7월 초 국회 본회의장.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강 의원이 소속된 정무위에서 제출한 이른바 ‘FIU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법사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내용이 크게 수정됐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여야가 상임위에서 타협을 통해 마련한 법안에 법사위 주장이 섞이는 바람에 법이 웃기는 짬뽕밥이 되고 말았다. 법사위가 이래도 되느냐”며 허탈해했다. 회의장 여기저기선 “법사위가 상원이에요, 상원”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지난해 5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법사위가 요즘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환노위가 제출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지금까진 화학 사고가 발생해도 그저 몇 백만원 벌금을 내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러니 기업이 화학 사고 예방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안전 의식도 결여돼 있는 것 아니냐. 이를 고치기 위해 사고 발생 때 매출액의 10% 이하 과징금을 내도록 했는데 이 수치를 건드리면 어떡하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法司委가 아니라 法死委” 거센 비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월권(越權)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법사위가 개별 상임위보다 위에 있는 듯 군림해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새삼 법사위 월권 논란이 거세지는 건 지난해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회의장이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되면서 길목에 버티고 선 법사위 권한이 더욱 막강해졌다는 분석이다. “법사위가 상원이자, 수퍼 갑”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특히 지난해 말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이 처리되는 과정은 법사위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하고 관할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외촉법을 박영선 법사위원장이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통에 새해 예산안마저 해를 넘겨 지난 1일 새벽에서야 겨우 처리됐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장이나 상원의장이었더라도 과연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새누리당 이한구 의원)는 비난이 이어졌다.

법사위가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을 ‘손볼 수 있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각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친 모든 법률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국회법 제86조 규정이다. 이에 따라 모든 법안은 반드시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체계·자구 심사권’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이를 단순히 잘못된 법안 문구를 고치는 윤문(潤文)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다수다.

하지만 법사위는 법률상 모순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해당사자 간의 충돌을 조정하는 일종의 ‘게이트키퍼’ 역할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국회법상 체계·자구 심사란 국회에서 제·개정하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법률 상호 간 모순을 시정해 법 체계상 조화를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임중호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논란이 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긴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과징금은 특정 행위로 취득한 이익을 환수한다는 의미인데, 환노위가 제출한 ‘매출액의 10% 과징금’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임 위원은 “현재 화학업계의 영업이익률이 3% 안팎인 상황에서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내라는 건 문을 닫으라는 의미다. 이는 단순 절도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법사위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임위 조정 기능까지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각 상임위가 해당 부처를 대변하다 보니 자기들에게 유리한 법률을 만드는 데에만 신경 쓰기 마련이다. 관계부처 조정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을 상임위 의원에게 청탁하는 일종의 ‘부처 청탁입법’도 흔하다. 이걸 법사위가 걸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상임위 이기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해 법사위 조정 기능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권 의원은 “솔직히 법사위가 상원 역할을 하는 건 맞다. 상임위 요구를 다 들어주면 국가재정이 파탄 나기 십상”이라며 “중진 의원들이 법사위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영선 법사위원장도 “각 부처는 자기 입장에서만 주장한다. 의료중재법은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가 맞붙었고, 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대결이었다. 그럴 때 누군가 중재해야 하지 않겠나. 그걸 법사위가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법사위 조정 기능이 없다면 상임위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별개의 법을 만들 테고, 대한민국은 중구난방처럼 흩어져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법사위가 상임위 조정 기능까지 맡는 데 대해선 비판적 견해가 강하다. 양원제 대신 단원제를 채택한 우리 헌정 체계상 어느 위원회도 다른 위원회보다 우위에 놓일 수 없으며 모든 국회의원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법사위가 다른 위원회와 국회의원들 위에 군림하는 듯한 태도 자체가 반헌법적 행위라는 지적이다. 법사위가 맘에 들지 않는 법을 한없이 뭉개는 데 대한 비판도 거세다. 실제로 의원들 사이에선 법사위만 가면 법이 죽는다며 법사위(法司委)가 아니라 ‘법사위(法死委)’로 불릴 정도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행정학)는 “법사위가 조정 기능 운운하며 우월적 지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상임위 분업 원칙과 철저히 배치된다”며 “이럴 거면 대한민국 국회에 개별 상임위를 굳이 둘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상임위별로 상충되는 법률이 나오면 본회의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런 거 조정하라고 본회의가 있는 거다. 그걸 미리 법사위가 제어하려 드는 게 편의주의이자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모든 상임위 법안이 법사위로 몰리면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입법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상원 같은 법사위, 해외선 찾기 힘들어
법사위가 상원인양 행세하고 있는 건 이미 다양한 풍경으로 목격되고 있다. 특정 부처의 장차관이 해당 상임위보다 오히려 법사위 앞에 진을 치고 로비전에 나서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의원은 “자신이 속한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이 마음에 안 들면 동료 법사위원에게 전화해 ‘그 법 문제 많아. 통과시키지 말고 붙잡아’라는 의원도 적잖다”고 전했다. 정부 부처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할 경우 법사위를 방패막이 삼아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우리 국회 법사위처럼 특정 상임위에 법 체계·자구 심사권을 부여하는 사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한국만의 독특한 관례라는 얘기다. 그 이면엔 법사위를 통해 소수파가 다수파를 견제하려는 정략적 의도도 한몫하고 있다. 실제로 야당은 여당의 날치기 처리를 막는 정치적 마지노선으로 법사위를 최대한 활용해 왔다.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은 “법사위 권력 집중화엔 각 상임위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개별 상임위가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익집단들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법사위로 떠넘기면서 자연스레 법사위 권력만 키워줬다는 얘기다. 입법조사관 등 각 상임위에 속한 지원인력 중 상당수가 국회 사무처를 중심으로 순환근무를 하는 탓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법사위의 법리적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법사위의 권력기구화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는 법사위를 법원·검찰 등 소관 부처만 담당하는 일반 상임위로 돌리고, 체계·자구 심사는 국회 사무처 법제실에서 전담하는 방안을 제기했다. 보건복지위 소속인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지난해 6월 “체계·자구 심사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용돼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며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도 다음 달 임시국회에 이른바 ‘법사위 월권방지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개정안 모두 법사위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 장벽이다.

학계에선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 다툼이 있을 경우 헌법재판소가 유권해석을 내려 분쟁을 해결하는 ‘권한쟁의심판’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이 소관 상임위의 권한과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다면 권한쟁의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재창 교수는 “법사위의 순기능을 살리되 권한 남용은 확실히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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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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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