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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힘에 의한 평화는 공허합니다

2014년 새해를 맞으면서 여러 가지 소망을 마음에 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새해가 좋은 것은 새롭게 소망을 갖기 때문이고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날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심삼일이라 할지라도 소망을 갖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런데 모든 소망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근본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평화에 대한 소망입니다. 평화에 대한 소망은 겉으로 드러난 모든 소망의 근본입니다. 어떤 특정한 소망이 이루어질지라도 평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그 소망은 바른 소망이 아니란 뜻입니다.

평화란 무엇입니까.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나 혼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참된 평화는 적극적 평화로서의 의미와 건강, 그리고 웃음이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음악도, 웃음도 그치고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게 됩니다. 이는 평화가 아니라 공허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통일을 말하면서 공허를 평화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공허는 때로 혼돈보다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공허가 다가올 때 생명은 활동을 멈추고 만물의 아름다움은 사라지며 소망도 함께 물러갈 것입니다.

문제는 평화의 길입니다. 어떤 길이 평화의 길입니까. 이 땅의 역사는 항상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로마나 미국의 평화는 모두 힘을 사용한 평화입니다. 그 힘이 군사력이 될 수도, 돈이 될 수도, 사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힘을 근간으로 하는 평화는 반드시 다른 힘을 낳습니다. 그 힘은 또 다른 힘을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참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근본 이유입니다. 그 힘으로 당장의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진 몰라도 언젠가는 다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습니다. 태극기에 나타나는 음양의 조화는 평화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또한 평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음과 양은 자신의 고유함을 가지면서 동시에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하나를 이룹니다. 여기에는 조금의 갈등도, 다툼도 없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힘의 관계나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다름과 인정, 존경과 연합의 공존 관계입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뫼비우스 띠와도 같은 원리입니다.

기독교의 근본 사상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십니다. 신적인 본성과 인적인 본성이 함께 존재합니다. 두 본성 사이에는 혼돈도, 분열도 없습니다. 두 본성이 하나가 됨으로 인해 다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각 본성은 자신의 고유함을 보존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이러한 관계를 파괴하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죄는 끊임없이 힘과 거짓을 통해 상대방의 다름과 고유함을 억압해 자신처럼 만드는 역사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거짓된 하나됨만이 존재합니다. 예전에 우리의 할머니들은 시집 와서 할아버지와 하나됨을 요구받았습니다. 그 하나됨은 남편을 철저히 따르는 하나됨이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요구를 따라야 했습니다. 3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할머니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순종은커녕 대반격을 준비하게 됩니다. 3년 뒤부터 할아버지는 모든 무력을 포기하고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우리가 택하는 평화의 길은 어떤 길인지요? 우리는 과연 참된 평화를 소망하는지요? 올 한 해는 참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사회 속에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박원호 장신대 교수와 미국 디트로이트 한인 연합장로교회 담임목사 등을 지냈다. 현재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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