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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岐路<기로>

중국 전국시대 양자(楊子)는 극단적 개인주의자였다. 한 올의 털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뽑지 않겠다는 일모불발(一毛不拔)의 주창자다. 묵자(墨子)는 반대로 이타주의자였다.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털이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에 이롭다면 거리낌이 없었다. 자막(子莫)이란 현인은 중간을 고수하며 정도(正道)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도를 고집하더라도 저울추가 없다면(執中無權·집중무권), 이 역시 고집함은 매한가지라는 것이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의 주장이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양자는 인(仁)에 해롭고, 묵자는 의(義)에 해로우며, 자막은 시중(時中·때에 알맞음)에 해롭다고 풀이했다.

핵심은 ‘집중무권’에 있다. 융통성을 발휘하란 뜻이 아니다. 중용(中庸)을 취함에 저울추와 같이 정밀하게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또 다른 고집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요즘에 비유하면 보수와 진보, 어설픈 중도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저울추처럼 정확하게 중용과 시중을 지키고, 어짐과 의로움을 염두에 두라는 말이다.

양자와 묵자는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함께 등장한다.

“양자는 갈림길을 보고 통곡했다. 남쪽으로 갈 수도 북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염색 안 된 명주실을 놓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노란색으로도 검은색으로도 물들여질 수 있어서였다(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기로(岐路)에 선 사람의 고뇌를 뜻하는 성어 ‘곡기읍련(哭岐泣練)’이 여기서 나왔다.

갈라지다는 뜻의 한자 기(岐)는 산(山)과 지(支)가 합쳐진 글자다. 지(支)는 잎이 달린 대나무 가지를 손에 쥔 모양이다. 갈라진 댓잎처럼 좌우로 펼쳐진 산길이 기(岐)다.

“인생살이 도처에 갈림길도 많지만, 장상과 신선은 범인들이 만드는 것(人生南北多岐路 將相神仙 也要凡人做), 백대의 흥망은 낮과 밤처럼 바뀌고, 강바람 불어와 고목을 쓰러뜨린다(百代興亡朝復暮 江風吹倒前朝樹).” 18세기에 지어진 풍자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 역시 첫 문장에 갈림길이 나온다.

갑오경장 120주년을 맞아 한국이 다시 기로에 섰다. 마냥 곡기읍련할 수만은 없다. 저울추와 같이 확고한 줏대를 갖춤이 먼저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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