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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나누고 온라인 협업, 제조업 혁명 불 댕겼다

에이드리언 보이어 ‘렙랩’ 설립자(왼쪽)가 동료와 함께 직접 제작한 3D 프린터들을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자녀’ 3D 프린터의 부품 상당수는 왼쪽에 있는 ‘부모’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다. 3D 프린터의 자가복제와 진화를 통한 대중화는 렙랩의 핵심 비전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매해 1월 초 세계 각지의 정보기술(IT) 전문기자들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몰려간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막 내린 CES 2014에서 단연 화제는 3D 프린팅 기술이었던 듯하다. 국내외 기자들의 다소 흥분 섞인 리포트에서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관련 기기를 전시한 ‘3D 프린팅 테크 존’은 방문자가 너무 많아 이동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3D 프린터란 3차원 설계도를 바탕으로 플라스틱·금속 같은 각종 재료를 이용해 입체적 조형물을 만드는 것이다. 3D 프린터와 연결한 컴퓨터에 스캐너 또는 CAD(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로 제작한 설계도를 입력하고 출력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일반 프린터가 잉크를 밀어내듯 3D 프린터가 플라스틱·금속 같은 각종 재료를 사출하며 얇디 얇은 종이처럼 쌓아 올려 입체물을 완성한다. 이미 인공 뼈, 맞춤형 수술도구, 전투기며 자동차 부품은 물론 구두, 칫솔, 햄버거 패티까지 3D 프린터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 CES 2014에서는 업계의 세계 2위인 3D시스템스가 코코아와 설탕으로 초콜릿이며 오색 사탕을 만드는 과정을 선보여 주목받았다고 한다. 사물 주위를 한 바퀴 돌기만 하면 3차원 이미지를 컴퓨터에 저장해 프린트할 수 있는 전용 스캐너도 등장했다.

2025년엔 시장 규모 4조 달러
지난해 초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D 프린팅이 기존 제조 방식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이를 ‘3차 산업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계공업에 기반한 1차 산업혁명(19세기), 대량생산 방식의 2차 산업혁명(20세기)에 이어 개인맞춤·자가생산 중심의 디지털 제조 혁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세계 제조업 중심이 중국으로부터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역량이 뛰어난 미국으로 재이동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건을 유통하고 구매하는 방식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월러스 어소시에이츠는 3D프린터 시장이 2015년 37억 달러, 2019년에는 6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맥킨지는 2013년 글로벌 보고서에서 ‘2025년에는 3D 프린팅 관련 산업이 4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ES 2014는 이런 전망이 허언이 아님을, 3D 프린터가 이미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기 시작했음을 보여줬다. 변화의 기저엔 ‘3D 프린팅 대중화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손색없는 인물이 있다. 영국의 수학자 겸 기계공학자인 에이드리언 보이어(Adrian Bowyer·61)다. 런던에서 나고 자란 보이어는 1977년부터 영국 배스(Bath)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4년 그는 ‘누구나 3D 프린터를 만들고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로선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꿈이었다. 사실 3D 입체 프린팅 기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30년 전이다. 84년 미국 발명가 찰리 홀이 관련 기술을 처음 개발한 뒤 3D시스템스를 창업했다. 이후 3D 프린터는 각종 산업 현장에서 주로 시제품을 제작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나 기기는 크고 무거웠으며 값도 매우 비쌌다(현재도 공업용 정밀 3D 프린터는 최고 10억원을 호가한다). 일반인 대상의 저렴한 제품이라 해도 1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보이어가 3D 프린터 대중화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건 세 가지 착안점 덕분이었다.

첫째, 3D 프린터를 만드는 여러 기술 중 하나인 FDM(3D시스템스 보유)의 특허권이 만료된 것이다.

둘째, 오픈소스 방식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관련 기술을 인터넷을 통해 모두 공개하고, 이를 세계 각지 전문가들과 협업해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셋째, ‘자기 복제가 가능한’ 3D 프린터를 구상한 것이다. 쉽게 말해 3D 프린터 제조에 필요한 부품 자체를 3D 프린터로 만들어내겠다는 복안이었다.

이런 비전 아래 보이어는 2005년 3월 배스대 안에 렙랩(RepRap)이라는 연구소를 개설한다. 렙랩은 ‘Replicating Rapid-prototyper(신속 조형 복제)’의 약자다. ‘신속 조형’이란 3D 프린팅 기법 자체를 뜻하는 만큼, 한마디로 ‘자기 복제 가능한 3D 프린터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보이어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지의 전문가를 규합했다. 미국·뉴질랜드·노르웨이는 물론 카자흐스탄 개발자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e메일과 온라인 메신저로 소통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2007년 최초의 렙랩 3D 프린터 ‘다윈’이 완성됐다. 애초 계획대로 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들은 모두 자가 제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2009년 선보인 2세대 제품 ‘멘델’은 ‘다윈’의 자녀 격이다. 2010년에는 손자 격인 ‘헉슬리’가 나왔다. 보이어가 각 제품에 세계적 생물학자의 이름을 붙인 건 3D 프린터의 복제와 진화라는 렙랩의 비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D 프린터 값 33만원까지 끌어내려
렙랩은 3D 프린터 제작기술은 물론 각종 제품을 프린트할 수 있는 3차원 설계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한다. 이에 더해 3D 프린터로 주요 부품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제품 가격은 현저히 낮아졌다. 현재 렙랩 제품 가격은 240~1000유로(33만~140만원) 수준이다.

렙랩의 도전은 전 세계의 얼리 어답터와 DIY(자가제작) 매니어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렙랩에 기반한 3D 프린팅 관련 커뮤니티와 기업들이 각지에서 생겨났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지난해 6월 세계 1위 3D 프린터 업체 스트라타시스가 6억400만 달러에 인수한 메이커봇이다. 2009년 렙랩 멤버가 주축이 돼 설립한 메이커봇은 인수 시점까지 총 2만2000대의 보급형 3D 프린터를 판매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공유 플랫폼 ‘싱기버스닷컴(Thingiverse.com)’에는 9만 개 이상의 설계 파일이 올라 있다. 렙랩을 뿌리로 여러 신생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덕분에 제품 가격은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번 CES 2014에는 500달러짜리 제품까지 등장했다. 다음 달 3D시스템스가 보유한 고급 3D 프린팅 기술(SLS)의 특허권이 만료되면 가격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보이어는 2012년 배스대를 떠났다. 현재는 3D 프린팅 기술의 구루이자 렙랩 제품 판매사인 ‘렙랩프로’의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10년 3월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귀한 기술을 세상에 개방키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남들이 못 쓰게 막으려 했다면 남은 인생을 전부 누가 내 기술을 가져다 쓰는지 찾으러 다니는 데 허비했을 거다. 밥 먹을 만큼 살고 재미있게 일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덕분에 세상은 새로운 가능성을 얻었고, 보이어는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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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