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디트로이트를 기억하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와 신정 휴가를 미국에서 가족과 보내고 있다. 고향인 미시간주 앤아버시를 방문하면서 한때 미국 최대 공업도시로 명성을 날렸던 같은 주의 디트로이트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해 부도를 낸 디트로이트시는 한국에 흥미롭고 중요한 교훈을 준다.

디트로이트는 미 자동차 산업의 부흥에 따라 20세기 전반에 급속도로 성장,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대도시가 됐다. 한때 미국의 미래를 대표했던 디트로이트는 그러나 50년대에 들어오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동차 산업이 조금씩 쇠퇴하면서 도시에서 기업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흑인 인구가 늘어나고 백인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산업의 공동화 및 인종차별이 심화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중산층 흑인 인구도 급감했고, 인구가 가장 많았던 1950년을 기점으로 볼 때 현재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당시의 60%에 불과하다. 도시의 약 30%가 빈터이며 빈 집이 7만 채가 넘는다.

디트로이트의 쇠락엔 복합적 원인이 있다. 아쉽게도 미국 사회에선 이를 각자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리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 진영은 디트로이트의 심한 인종차별의 역사가 도시 쇠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 진영은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와 디트로이트 시 정부의 부정부패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냉철하게 보면 두 주장 다 맞지만 결국 20세기 말에 급속하게 진행된 미국 산업 공동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한 국가들은 거의 모두 산업 공동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트로이트는 이 현상을 대표하는 최악의 상징이 됐다.

위키피디아에서 ‘산업 공동화’를 검색하면 한국어로 된 페이지는 나오지 않고 영어 페이지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다. 삼성·현대·LG가 국제적 브랜드로 부상하면서 한국 경제가 튼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덕도 있을 터이지만, 아무래도 산업 공동화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탓도 있지 않을까. 한국 내에서 복지·행복, 그리고 30대의 불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긴 하지만 산업 공동화에 대한 논의, 즉 디트로이트의 문제는 한국에 아직 멀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한국의 산업 공동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대도시에선 이미 디트로이트와 비슷한 현상을 찾을 수 있다. 일례로 대구시 중구의 경우 인구가 정점을 찍은 82년엔 21만 명이었는데 2012년에는 7만5000명이었다. 30년 만에 약 65%의 인구 감소를 겪은 것이다. 이는 디트로이트보다 두 배 빠르다. 대구시 남산동엔 빈 집이 많아 관리 부실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집을 헐고 텃밭 혹은 주차장을 만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비단 대구뿐이랴. 부산 역시 인구 감소에 따른 공동화가 진행 중이며, 다른 대도시의 원도심 및 인접 지역에서도 공동화는 심화되고 있다.

한국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직 디트로이트만큼 심하게 산업 공동화가 진행된 도시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디트로이트는 산업 공동화 초기인 60년대에만 해도 인구가 미국 도시 중에서 5위에 달했다. 바로 이 점에서 산업 공동화의 무서움이 보인다. 산업으로 흥한 도시가 산업 공동화라는 치명타를 입었을 때 산업 이외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디트로이트의 전철을 밟으며 망한다. 이런 ‘도시 시체’에선 사회적으로 버려진 사람만 불안정한 환경 속에 남겨지는 것이다.

아직 늦진 않았다. 튼튼한 경제 기반의 중요성을 거듭 가르쳐 주는 것이 디트로이트 사례다. 오늘날처럼 경제의 중요성을 잊어버린 채 ‘행복’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만 논의가 활발한 것은 난센스다. 행복은 사회적 번영과 안정 속에서 개개인이 찾는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