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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잡탕밥이 된 예식장, 사교장이 된 장례식장

건축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상상력을 반영한다. 『빨간 도시』를 쓴 건축가 서현 교수(한양대)는 도시와 자연의 이분법을 탈피하면 마당이 각 세대와 연결되는 아파트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조건이 척박할수록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진 효형출판]


빨간 도시

서현 지음

효형출판, 304쪽

1만5000원




“이도 저도 아닌 잡탕…예식장은 우리의 신데렐라들이 갖는 평생 한 번의 꿈을 간파한 건축업자들이 이뤄낸 성취다.” (‘슬픈 신데렐라’)



 “이들에게는 모순적인 요구조건이 있었다. 멀리서는 잘 보여도 가까이서는 가려주어라. 당고개 무당 같은 윗도리에 장례식장 사회자 같은 아랫도리의 조합….” (‘우리들의 러브호텔’)



 한양대 건축학과 서현 교수는 이 책을 가리켜 “내가 건축을 통해 본 세상의 목격담”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목격담, 참 서늘하다. 예식장·러브호텔·장례식장은 물론 아파트·고속도로 휴게소·도서관·학교·정부청사 등을 차례로 ‘도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이들 공간이 말하는 것들을 차례로 들춰낸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왜 남한의 아파트는 이런 모양을 갖게 되었고, 예식장과 러브호텔은 요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가. 장례식장에서 상주와 조문객들은 왜 방에 앉아 있으며, 학교는 왜 병영 같아 보이는가.



 저자는 한국만의 독특한 건축에서 씨족 공동체 사회의 흔적을 읽어낸다. 결혼식장이 대표적인 예다. 신랑 신부의 부모가 한 줄로 늘어서 하객과 악수를 나누는 거대한 로비, 신랑 쪽 동의가 없으면 신부 쪽 집안의 접근이 봉쇄되는 폐백식장은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여기기보다는 ‘이 집 아들과 저 집 딸’의 결합으로 보는 전통적 사고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품위보다는 화려함, 엄숙함보다는 요란함으로 치장한 건물 또한 앞으로 이 사회의 건축 폐기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은 애도보다는 ‘사교장’의 기능이 더 큰 공간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방은 구성원끼리 서로 끈끈한 관계를 확인하는 장소다. “장례식장에서 신발을 벗고 방에 앉아 먹는 식사는 상대방과 씨족 공동체에 육박하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할 때 필요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학교와 도서관,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같은 문화시설에도 권위의식과 배타성, 그리고 엄숙주의적인 문화관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고 했다. “ 방문객 안내소로 가는 문은 담장 한쪽을 헐어낸 이른바 개구멍이나 마찬가지”(정부과천청사)라 했고, “새 술은 낡은 부대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람을 무조건 움츠리게 하는 크기, 좌우대칭, 일률적으로 뚫어놓은 창은 건물에서 사람의 냄새를 지워버렸다”(정부대전청사)고 했다. 아파트에 대해서는 “편하다. 안전하다. 쾌적하다”면서도 “그러나 획일화, 익명성의 비난도 무시할 수 없다. (…) 시(詩)는 사라지고 설명서만 남았다”고 했다.



  저자는 씨족공동체, 일제강점기, 반공문화, 향락문화, 과열, 월드컵 등 한국만의 건축에 새겨진 흔적을 ‘빨강’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한때는 이데올로기 문제로 금기시됐다가 월드컵 때 자신감의 상징으로 도시를 뒤덮었던 빨강.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건축가는 사회학자이며 시인인 동시에 과학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건축가가 지닐 수 있는 사회학자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내 글에 분노와 개탄이 묻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라고 썼다. 아파트는 무엇이고, 학교는 무엇인가. 또 광장은 무엇인가. 그는 이제 우리 사회가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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