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술꾼 속 풀던 칼국수, 실수로 태어난 쫄면

인천시 용동의 56년 된 칼국숫집 ‘초가집 손칼국수’ 주인 신경현 할머니(오른쪽)가 하루 숙성한 반죽을 밀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짜장면과 쫄면의 발상지. 칼국수 골목과 냉면 거리가 있는 곳. 바로 인천이다. 이렇게 인천에서 면(麵)요리가 발달한 이유가 있다. 1935년 국내 최초 밀가루 공장인 일본제분 인천공장이 인천 중구에 들어섰다. 인천시는 이런 특징을 활용해 2018년까지 ‘누들 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다시피 한 칼국수·짜장면·쫄면·냉면 거리를 연계해 관광지구로 꾸미는 것이다. 거리별 원조 식당을 찾아 골목에 서린 얘기를 들어봤다. 식당은 인천 중구·동구청이 추천했다.

인천 '누들타운' 가보니 … 첫 제분공장 주변 가게 몰려
냉면 사리는 무제한 공짜
배달 짜장면도 이곳이 원조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용동 칼국수 골목=“여긴 원래 술집이 많았어. 일제 강점기엔 요정촌이기도 했고. 술 마시고 속풀이하러 칼국수를 찾다 보니 가게가 늘어난 거지.” ‘초가집 손칼국수’를 운영하는 신경현(81) 할머니의 말이다. 신 할머니는 이 집의 2대 사장이다. 시어머니가 1958년부터 운영하던 칼국숫집을 물려받았다. 근처에 밀가루 공장과 바닷가가 있어 시어머니는 바지락을 잔뜩 넣고 칼국수를 끓여 냈다.



 신 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방식 그대로 칼국수를 만든다. 반죽을 하루 숙성시킨 뒤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든다. 점심·저녁이면 손님들이 줄을 서는 비결을 물었다. “육수 만들기와 반죽 숙성, 칼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맛을 냈기 때문 아닐까.”



 ◆북성동 차이나타운=1900년대 초반 짜장면을 처음 선보인 중국집 ‘공화춘’은 현재 박물관으로 변했다. 그 다음 오래된 곳이 ‘풍미’로 알려졌다. 4대째 이어진 곳이다. 풍미를 운영하는 조지미(62·여)씨는 “초기 짜장면은 춘장만 썼는데 나중에 캐러멜소스와 전분을 넣으면서 지금의 짜장면이 됐다”고 전했다. 풍미는 1940년대에 처음으로 배달을 시작했다.



 차이나타운엔 짜장면을 팔지 않는 중식당이 있다. 만두전문점 ‘원보’다. 문에 ‘짜장면·짬뽕 없습니다’라고 써 붙여놨다. 그래도 자리에 앉자마자 “짜장면 주세요”라는 주문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짜장면은 차이나타운과 중식당의 대표 상품이다.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세숫대야 냉면은 주머니 가벼운 이들이 배를 채우는 수단이었다. ‘삼미 소문난 냉면’ 김중훈(68) 대표는 거리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쟁 지나고 얼마 뒤였지. 여기에 동일방직 같은 큰 공장이 많았어요. 돈 없는 공장 근로자들이 찾던 게 냉면이야. 다 젊은 애들인데 좀 잘 먹겠어. 덤으로 사리를 잔뜩 얹어주다 보니 그게 특징이 돼 냉면그릇까지 커졌어요.”



 지금도 전통이 이어져 대부분 냉면집에서 사리는 무제한 공짜다. 값은 5000원 안팎. 여름철이면 주말에 2만여 명이 찾는다.



 ◆신포동 쫄면 거리=쫄면은 인천의 면 중에서 제일 늦게 등장했다. 아이디어 상품은 아니고, 실수로 탄생했다. 1970년대 초 냉면을 만들던 광신제면에서 면을 잘못 뽑아 굵은 면이 나왔다. 버리기 아까워 공장 옆 분식집에 줬더니 분식집 주인이 비빔국수처럼 고추장과 야채를 넣고 버무렸다. 이게 인기를 끌면서 일대에 쫄면 거리가 생겼다.



 원조 분식점은 문을 닫았고, 비슷한 시기에 쫄면을 팔기 시작한 신포우리만두 본점은 남아 있다. 2대째인 매부에게서 이 점포를 물려받은 오정근(46) 사장은 “질긴 냉면 반죽을 쫄깃한 지금의 면발로 바꾼 게 우리 가게”라고 소개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