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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안주인에게 모질었던 엘리제궁 잔혹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생각보다 프랑스는 마초사회다. 국회의원이나 기업 간부의 여성 비율이 유럽연합에서 늘 바닥이었다. 남녀동수법이란 것도 그래서 생겼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의 사생활 존중도 따지고 보면 마초 문화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게 고위층의 사생활인데 고위층은 대부분 남자니 사생활에 관심 끄라는 얘기다.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은 이름부터 마초다. 엘리제란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이 가는 극락을 말한다. 미녀와 와인이 넘쳐나는 곳에서 아내들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선지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들은 대체로 엘리제궁과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국민 영웅과 함께 살았던 이본 드골은 특히 그랬다. 엘리제궁을 마뜩잖게 여긴 남편의 불같은 성격을 군소리 없이 받아내며 그림자처럼 살았다. 1969년 드골이 엘리제를 떠나 귀향하고 나서야 크게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한다.



  클로드 퐁피두에게 엘리제는 최악의 장소였다. 희귀병으로 급서한 반려자를 잃은 삭막한 기억만이 남았다. 이후 숱한 초대에도 단 한 발짝도 엘리제에 들여놓지 않았다.



 안에몬 지스카르 데스탱은 아예 엘리제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네 자녀와 살 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엘리제에는 사무실만 마련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출퇴근했다. 덕분에 자유스러워진 대통령은 혼자 페라리를 몰고 애인 집을 드나들었다.



 다니엘 미테랑 역시 엘리제에 들어가지 않았다.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그녀에게 엘리제궁은 제약이자 장애물일 뿐이었다. 어쩌면 엘리제의 주인이 되기 전부터 두 집 살림을 해온 남편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훌륭한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실리아 사르코지는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엘리제궁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실은 엘리제보다 남편이 더 싫었다. 그래서 6개월 만에 짐을 싸 애인 곁으로 떠나버렸다. 그녀 대신 들어온 브루니 사르코지는 나름대로 엘리제를 즐겼다. 하긴 2층에서 결혼식까지 올렸으니 추억이 남다를 터다.



 엘리제궁에서 가장 행복했던 퍼스트레이디는 누가 뭐래도 베르나데트 시라크였다. 엘리제궁 정원을 자신의 기호대로 가꾸며 역대 대통령 중 엘리제를 가장 좋아했던 남편의 내조에 최선을 다했다.



  엘리제의 현 안주인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는 악몽을 꾸고 있다. 동거 중인 대통령한테 새 애인이 생기는 바람에 자칫 쫓겨날 상황에 처했다. 프랑수아 올랑드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덜 마초인 사람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남편으로 엘리제에 들어갈 뻔도 했다. 그가 마초들의 천국인 엘리제에 또 한 명의 퍼스트레이디를 초대하려 하고 있다. 그녀가 행복할진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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