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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모범생 그만 … 삼성, 공채 폐지 한발 다가서

삼성그룹이 ‘공채 고시’ 폐지에 한발 다가섰다. 15일 발표한 삼성의 새 신입사원 채용 방식의 핵심은 수시로 ‘현장 스펙’이 탄탄한 인재를 뽑겠다는 것이다. 지식과 암기력을 주로 묻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SamSung Aptitude Test)에 대한 의존도도 낮췄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다. 대학 시험과 대기업 공채의 외길에 갇혀 있는 청년에게 새 길을 열어주기 위해선 더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기업이 더 변해야 게임의 룰도 바뀐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삼성직무적성검사를 마친 응시자들이 학교를 나서고 있다. 이날 전국 83개 고사장에서 9만 명이 시험을 치렀다. [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의 고민은 SSAT 과열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삼성그룹 하반기 대졸 공채의 필기전형인 SSAT는 전국 83개 고사장에서 9만2000명이 응시한 가운데 치러졌다. 경쟁률은 16대 1을 넘었다. 학력·성별 대신 인성·적성을 보겠다는 도입 취지는 무색해지고 SSAT가 ‘삼성 고시’가 된 결과다. 수십만원씩 수강료를 받는 전문학원이 등장했고, 대학에선 SSAT 대비반을 만들었다. 관련 수험서만 300종에 이른다. 1인당 4269만원인 스펙 쌓기 비용을 감안하면 4조원을 이 시험에 쏟아부은 것이다.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이인용 사장은 “취업준비생과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커서 우리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 고민의 답을 수시와 추천에서 찾았다. 누구든 준비가 됐으면 지원하라는 길 터주기다. 총장 추천은 스펙이 아니라 대학에서 인정하는 인재를 뽑겠다는 의미다. 지방 인재 채용 확대의 뜻도 담겼다. 삼성 관계자는 “영어 점수나 학점이 좋은 학생이 아니라 리더십과 지원 분야에 대한 현장 스펙이 뛰어난 인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은 “의미 있는 변화로 선진국형”이라며 “새 방식으로 뽑은 인재가 성과를 내면 이런 변화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월 인사팀 직원이 대학, 길거리 등에서 인재를 수시로 캐스팅하는 ‘더(THE) H’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모집·서류전형·면접·선발’의 틀을 깨보겠다는 시도다. 현대차 관계자는 “스펙을 위해 특이한 경험을 일부러 만드는 등 입사 제도가 왜곡되고 있다”며 “올해도 기존 공채 방식을 벗어난 시도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변화만으론 ‘대졸·공채’의 틀을 완전히 깨기는 어렵다. 지난해 SSAT를 본 김모(27)씨는 “삼성이 제도를 바꾼다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맞춤형 삼성 수험 강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천제가 제대로 되려면 기업은 대학을, 대학은 중·고교의 평가를 믿지 못하는 불신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총장 추천을 받기 위한 대학 내 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은 이번 안을 만들며 SSAT 완전 폐지를 검토했으나, 공정성 문제에 대한 내부 반론으로 SSAT를 없애지 못했다.

 근본적인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세훈 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청년층이 다양한 길로 가기 위해선 미국처럼 사회 초년병은 벤처나 중소기업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도록 하는 쪽으로 채용 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고시 형태의 채용 방식은 없어져야 한다”며 “다른 기업도 함께 변해야 전체 채용시장이 바뀌고 대학교육도 바뀔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훈·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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