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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넷에 집창촌 탈출 … 인신매매 피해여성 도우미

네팔의 여성운동가 다누와르가 15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1996년 2월 인도 뭄바이의 집창촌. 경찰의 집중 단속이 시작되자 500여 명의 소녀가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네팔 출신인 수니타 다누와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14살이던 그가 사창가로 흘러간 건 인신매매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다누와르 가족은 인도 전역의 광산을 돌아다녔다. 광부들은 어린 다누와르에게 귀엽다며 쌀로 만든 캔디를 건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다누와르의 눈에 보인 건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몸 파는 여성들뿐이었다.

 다누와르는 그곳에서 악몽 같은 6개월을 보냈다. 매춘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자살도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한 달을 저항하며 버티자 다른 사창가로 보내져 집단 강간을 당했다. 4만 루피(70만원)에 넘겨진 다누와르의 몸은 시간당 300루피(5000원)에 팔려나갔다.

 간신히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왔지만 돌아가는 길 또한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시 200여 명의 소녀가 본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했지만 네팔 정부는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 가능성을 우려했다. 인도의 쉼터에서 6개월을 보내는 동안 누군가는 HIV로 사망했고, 또다시 도망친 이도 있었다. 결국 128명의 소녀만 다시 네팔 땅을 밟게 됐다.

 그해 고국으로 돌아간 다누와르는 피해자 12명과 함께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싸우는 단체 ‘샤크티 사무하’를 조직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여성운동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비정부기구(NGO)를 정부에 등록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정부 관료들은 ‘학위가 없다’ ‘시민권이 없다’는 식으로 퇴짜를 놓았다. 2000년 인신매매 피해자로 구성된 첫 NGO로 출범했지만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탓에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성폭행 피해자들의 조직이라는 사실을 최근까지 숨겨야 했다.

 15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만난 다누와르는 자신이 겪은 우여곡절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는 여성 인신매매 구호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제5기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 프로그램의 첫 강연자로 한국에 온 다누와르는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지도자가 되기까지’란 주제로 아시아·아프리카 21개국에서 온 25명의 여성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처음엔 신전에 참배를 드리러 가도 에이즈가 옮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여성재활센터에서 만난 레누 라즈반다리 박사는 이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닌 국가와 제도의 잘못”이라며 “피해자들끼리 뭉쳐서 당당히 살라”고 조언했고, 여기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2012년 네팔은 인신매매범 바지르싱 타망(39)을 체포해 170년 형을 선고했다. 네팔에서 인신매매범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당시 인신매매에서 구조된 6명은 ‘샤크티 사무하’의 지원으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다누와르는 인신매매가 비단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해외 취업을 빙자한 성매매나 사진만 보고 떠나온 결혼 이민 사기도 넓은 범위에서 보면 인신매매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 전역에 퍼진 인신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구혜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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