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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술과 함께 마시는 것들

김형경
소설가
그 후배 남성은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친구들은 그를 술집으로 데려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권했다. 선후배도, 존경하는 선생님도 똑같았다. 일종의 의식처럼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오직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나누었다. 한 사람도 그에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넘기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한 책에서 우연히 이런 대목을 읽었다.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술을 따라 주는 것이 안부를 묻는 일이고, 술잔을 부딪치며 상대를 위로하고, 자기 잔의 술을 마시면서 각자 슬픔을 느낀다. 술자리에서 함께 취하는 행위를 뭉뚱그려 위로라고 여긴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상대방을 감싸 안아 편안하게 해주는 행동을 할 줄 모른다.”

 저 대목을 인용하면서 그는 내게 물었다. 그럼, 여자들은 위로하는 말과 행동을 잘 하는가. 그의 질문에 놀라기보다 마음 아팠다. 남자들은 얼마나 깊은 곳에 감정을 억압해둔 걸까 싶었다.

 도심의 저녁 술집에는 늘 직장인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낮 동안 몇 번이나 마음에서 치솟던 뜨거운 기운을 다스리고, 집과 직장을 뒤로한 채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을 잠재운다. 근무 시간 내내 곤두서 있던 신경은 술기운에 풀어지고, 잊고 있던 호기로움이 슬며시 소환된다.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술을 마시고, 힘내자고 자신을 격려하는 대신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른다. 퇴근 후 술자리는 그 자체가 직장인들이 감정 영역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성소처럼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 특산품인 폭탄주는 그 술잔을 돌릴 때 남자들이 내면에서 경험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은유 같다. 그들은 억압해둔 마음의 폐쇄회로와 접촉하면 슬픔, 불안감, 적개심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면 봉인이 풀리는 순간 폭탄 같은 감정들과 맞닥뜨리면서 통제력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 전에 빨리 취해서 위험한 감정들이 무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폭탄주를 들이켠다.

 후배는 주변 사람들의 술자리 위로 덕분에 마음의 힘을 조금 차렸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몸에 가득 찬 술독을 해결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꽤나 소요되었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었다. 여자들은 술 없이도 얼마든지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기와 상대를 위로한다고. 그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믿어지지 않는 듯한, 혹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듯한. 사실 여자들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에게 술자리가 필요한 이유를.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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