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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퇴직금 날리는 사회 ④ 번외편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내 이름은 공무원.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 처음엔 무척 망설였다. 내가 여기 나와도 될까. 주변에선 말렸다. 퇴직금도 없는 주제에 무슨 ‘퇴직금 날리는 사회’ 출연이냐고. 정년 철석같이 보장되지, 후직(後職) 남보다 쉽게 얻지, 퇴직 후 연금 빵빵하게 받지…. 고령화의 최대 수혜자인 주제에 누구 빈정 상하게 할 일 있느냐고. 초저금리 시대, 연금 월 100만원은 목돈 5억원 가치가 있는데, 월급쟁이보다 두 배 넘게 연금을 타먹으면서 무슨 수작이냐고. 그 점, 앞서 몇 억원씩 퇴직금을 날리고 이 난에 등장했던 난달라, 재택구, 안전빵 세 분께는 대단히 미안하다.

 나도 안다. 요즘 나를 질시하는 눈이 부쩍 늘었고 이유가 바로 연금 때문이란 것. 하기야 그럴 만하다. 보통 직장인이 20여 년 회사 다니다 퇴직해 월 84만원 국민연금 받을 때, 나는 219만원 공무원연금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내는 돈에 비해 가장 많이 받는 편이다. 덜 내고 많이 받으면 어떻게 되나. 결과는 불문가지, 구멍이다. 연금 재정은 10년 전에 바닥났다.

 내게 줄 연금 마련을 위해 정부는 국민 세금을 갹출한다. 이명박 정부 때 7조7000억원, 이 정부에선 15조원, 10년 뒤엔 해마다 10조원 넘게 걷어야 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퇴직 전 월급의 40%밖에 안 주지만, 공무원 연금은 62.7%나 준다. 국민연금은 생긴 지 20여 년 만에 두 차례 크게 손을 봐 받는 돈의 43%를 깎았지만, 공무원 연금은 50여 년 동안 손질 시늉만 냈다. 그 바람에 귀족연금으로 불리며, 이런 귀족연금 대주다 나라 망할 것이란 비난도 거세다. 그래, 나 같아도 눈꼴 시릴 만하다.

 하지만 어디 세상사 어떤 일이 보이는 게 다겠나. 나도 할 말은 있다. 내 연금은 국민연금보다 28년 먼저 생겼다. 그땐 ‘아들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절이다. 평균 수명은 50세. 연금 받기 10년 전에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연금 받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돈이 남아돌아 경제발전기금이라며 정부가 항만 짓고 도로 닦는 데 몇 조원씩 가져다 쓸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빼간 돈, 넣어야 할 것 안 넣은 돈이 17조원쯤 된다. 그 돈만 다 넣어놨어도 지금처럼 세금을 쏟아붓는 일은 없었을 거다.

 게다가 10여 년 전부터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다. 50년 전보다 평균 수명은 20년 넘게 늘었다. 공무원 연금 받는 사람도 덩달아 늘었다. 최근엔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2011년 수급자는 31만 명이었는데, 지난해는 36만 명이 됐다. 2년여 만에 5만 명이 늘었다. 나도 당신들처럼 급속한 고령화의 희생자인 셈이다.

 자꾸 국민연금과 똑같이 놓고 비교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내 연금은 성격이 다르다. 후불 임금에 가깝다. 공무원 연봉은 후하게 잡아도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의 80~90% 정도다. 싼 인건비로 세게 일한 대가를 퇴직 후 받는 거다. 그뿐인가. 내 연금엔 퇴직금도 들어 있다. 정부가 퇴직금 대신 연금을 받도록 설계해서다. 남들 퇴직금 2억~4억원을 쪼개 받는 셈이라 좀 많아 보이는 건데 그게 그리 배 아픈가. 또 있다. 연금은 나보고 부정부패 말라고 주는 보상이기도 하다. 그것마저 없으면 돈이 말하는 세상, 공직자는 절대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구두선이 어찌 통하겠나.

 그런데도 세상은 내 연금 깎으라고 아우성이다. 공무원 100만 명 시대의 원년인 올해,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곧 또 공무원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든단다. 개혁한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이번엔 위원회 멤버에 공무원을 빼서 ‘셀프 개혁’을 못하게 한단 말도 나온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국민연금과 통합할 수도 있다. 절반 넘게 깎이는 걸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죽을 때까지 내 연금 온전히 받을 기대는 애초 버렸다. 그야말로 공무원까지 퇴직금 날리는 사회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그런데도 해마다 공무원 시험에 목 매는 ‘공시족(公試族)’은 늘고 있으니, 무슨 요지경 속인가.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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