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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임무는 뿔뿔이 흩어진 양을 모으는 일"

염수정 신임 추기경(오른쪽)이 13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서임 축하행사에서 기도하고 있다. 올해 71세인 염추기경은 80세 미만의 추기경에게 주어지는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된다. 왼쪽은 정진석 추기경. [박종근 기자]


13일 서울 명동성당 옆 추기경 집무실에서 염수정(71) 신임 추기경을 인터뷰했다. 검정 사제복 차림의 염 추기경 뒤에는 4복음서의 한문 성경을 붓글씨로 옮겨 놓은 병풍이 서 있었다. 정진석 추기경이 집무할 때는 없던 물건이었다. 비서실에선 “얼마 전 신자분이 선물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뷰도 그랬다. 염 추기경은 성서를 배경으로 물음에 답했다.

염수정 추기경 인터뷰



 이날 아침 염 추기경은 서임 소감을 밝히며 “목자의 임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을 모으는 일”이라고 했다. 그건 쪼개지고 충돌하며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순종하라 하셨을 것



염수정 추기경 집무실에 걸려 있는 액자. 염 추기경 삶의 신조다. [박종근 기자]
 -추기경께서 보는 우리 사회의 화두는 뭔가.



 “각자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통해선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느님께선 그런 바벨탑을 부수고 흩어놓으셨다. 그렇게 무너지고 흩어지고 난 뒤에 인류는 하나가 됐다. 거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 있다. 그걸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



 -각자의 바벨탑이란 뭔가.



 “인간의 고집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다. 그게 무너지고 흩어질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하느님 앞에는 여야가 없다. 당(黨)이라는 건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런 부분적 시선을 갖고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



 염 추기경은 그런 사례가 역사 속에 숱하게 있다고 했다. 인간의 고집, 인간의 신념으로 쌓아 올라가는 바벨탑을 통해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좌와 우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우리 사회의 고집스러운 진영이 바로 추기경이 지적하는 바벨탑 중 하나였다.



 -연말 미사에서 사제의 정치 참여를 비판했다. 그건 천주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논란거리였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게 뭘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는 거다. 그게 메시아의 사명이다. 인류는 하나의 아버지, 하나의 아빠를 가진 형제다. 너와 나 사이에는 그런 형제애가 흐른다. 그걸 통해 우리의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사제가 할 일은 둘로 쪼개는 게 아니라 하나로 만드는 일이란 지적이었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의 날 메시지도 인용했다. “세계화와 글로벌화로 인해 이웃나라가 더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절로 형제애가 흐르는 건 아니다. 형제이면서도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이도 있다. 카인과 아벨도 그랬다. 그리스도께선 한 아버지 아래서 목숨 바쳐 사랑하라고 했다. 그게 형제애다.” 염 추기경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바벨탑이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되게끔 하는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오소서 주님 예수님’추기경 모토





 -삼형제가 모두 신부가 됐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어땠겠나. “어머니, 저 추기경 됐습니다”라고 전화하면 어머니의 첫마디는 무엇이었나.



 염 추기경은 이 대목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집안은 6대째 천주교다. 순교자도 있다. 어머니는 쉬운 책을 골라 삼형제에게 직접 교리도 가르쳤다. 감았던 눈을 떴다. “어머니께선 이렇게 말씀했을 거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살아라. 꼭 그 뜻에 일치해서 살아라.”



 추기경에게는 자신만의 모토가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다. 염 추기경은 자신의 모토가 ‘마라나타(Maranatha)’라고 했다.



 -마라나타, 무슨 뜻이 담겼나.



 “‘오소서, 주님 예수님’이란 뜻이다. 초대 교회의 전례에 나오는 환호와 같은 말이다. 강력한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라는 환호이자 희망이다. 우리 사회에, 우리의 삶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정말 부족한 것들도 많다. 그런 껍데기는 다 날아가고, 알맹이만 남으라는 기도다.”





모두가 즐거워해, 저만 빼고



 이날 아침 추기경 서임 소감을 밝히며 염 추기경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 같다. 저만 빼고”라며 좌중을 웃겼다.



 -왜 “저만 빼고”라고 말했나. 추기경의 직책이 무겁게 느껴졌나.



 “저는 참 부족하다. 이 길은 하느님에게 순종하면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종종 다른 것들이 섞인다. 저는 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럼 그걸 털고 다시 하느님을 향해 걸어간다. 저는 순례를 참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 순례라고 생각한다.” 순례의 길에서 그는 이제 추기경이란 이름으로 걸어가야 한다. 새로운 길의 출발점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선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 ‘저만 빼고’였을까.



 인터뷰하는 동안 추기경 서임을 축하하는 전화와 손님들이 많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성서에서 가슴에 꽂고 사는 딱 한 구절을 꼽으면?” 염 추기경은 주저 없이 ‘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마라나타)’이라고 했다.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구절이다. 추기경 집무실을 나섰다. 겨울 바람이 매섭다. 무엇일까. “오소서! 주여”라는 기도를 위해 우리의 가슴에서, 우리의 공동체에서 무너뜨려야 할 바벨탑은 과연 어떤 걸까.



글=백성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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