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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통일의 말은 발굽을 멈출 수 없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삼국지연의』를 가슴에 품고 지내던 어린 시절, 관운장의 적토마는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매력 있는 인격체였다. 운장과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빈 적토마는 운장이 전사한 뒤 오나라의 마충에게 넘겨졌지만, 먹이를 마다하고 끝내 굶어죽어 운장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말의 충성을 얻지 못한 마충(馬忠)의 이름이 민망하다.

 그리스신화에서도 말은 영특한 존재로 등장한다. 영웅 벨레로폰의 애마 페가수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마(天馬)였고,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도 오디세우스의 목마였다. 말은 사회성이 뛰어나 협동과 질서가 생명인 군집생활에 익숙하다. 2014년은 갑오년 말띠 해다. 올해는 갈등과 분열의 늪에 빠진 이 나라에 소통과 화합의 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한다.

 말의 두 눈은 정면이 아니라 양 측면을 바라보기 때문에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좌우를 두루 살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좌우의 이념 대립을 말처럼 폭넓은 시야로 품어 안고 치유하는 대통합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정치권이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자리에서 도리어 갈등을 부추기며 분노와 증오의 편 가르기로 당파적 이익을 낚아채는 기만의 정치를 끝장내지 않는 한 국민통합은 위선의 구호를 넘어서지 못한다.

 말을 지배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했다. 게르만족은 훈족의 기마군단에 쫓겨 민족대이동에 나서야 했다. 훈족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단테는 『신곡』에서 훈의 영웅 아틸라를 지옥에 떨어뜨려 버렸다. 칭기즈칸은 조랑말 떼를 휘몰아 재빠르게 공격하는 속도전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다. 풀만 먹는 말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지근(遲筋)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속근(速筋)은 순발력이, 지근은 지구력이 뛰어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와 선진국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는 인문의 향기 드높은 문화국가, 이념의 우상을 깨뜨린 통일국가를 향해 다시금 끈질기게 달려야 한다.

 우리 근세사의 갑오년은 역동적인 기억을 품고 있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독도의 등대가 처음 불을 밝혔고 통일호 열차가 경부선을 달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솟아난 극일(克日)과 통일의 염원이었다. 조정의 분열과 일제의 강압 속에서 추진된 1894년의 갑오경장은 미완(未完)의 근대화로 끝나고 말았지만, 실학과 동학의 개화사상에 뿌리박은 그 진취적 역사의식마저 미완의 열정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경장(更張)은 느슨해진 줄을 팽팽하게 조인다는 뜻이다. 세기를 넘어 되살아나는 주변 열강의 제국주의적 패권 다툼 속에 21세기의 첫 갑오년을 맞은 우리는 새로운 경장의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또다시 내부 분열이나 외세의 간섭 따위로 나라의 미래를 그르친다면 북녘 땅에 오성홍기(五星紅旗)가 나부끼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120년 전의 경장이 근대화의 열정이었다면, 오늘의 경장은 북한에 자유민주의 숨결을 불어넣는 통일의 열정이어야 한다. 통일은 인구 7500만 명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의 가장 깊은 뿌리인 분단의 현대사를 극복하는 ‘치유와 회복’이다. 통일은 비용과 수익을 저울질하는 ‘가격’의 셈법이 아니다. 온 민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의 실현이다. 광기(狂氣)의 인권 말살, 그 처절한 신음이 들리지 않는가. 북한인권법 제정을 한사코 거부하는 어떤 국회의원들의 귀에야 들릴 턱이 없겠지만.

 혹자는 말한다. 같은 혈통끼리 국경을 맞댄 미국과 캐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남북한도 통일 없이 평화로운 이웃이 될 수 있다고. 과연 그런가. 저들 나라는 분단국도 아니고 적대국도 아니다. 캐나다가 미국에 ‘워싱턴 불바다’를 으르렁거린 적이 없다. 독일이 오스트리아에 무장공비를 내려보낸 적도 없다. 외세의 강압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와는 그 태생부터 다르다. 핵무기를 거머쥔 최고 존엄, 동족을 무참히 살상하는 ‘가짜 우리 민족끼리’가 북에 버티고 있는 한 남남갈등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통일은 그 갈등의 밑뿌리를 뽑아내는 일이다.

 12간지의 갑(甲)은 푸른 하늘을, 오(午)는 정오의 정남방을 가리킨다. 갑오년은 태양이 중천(中天)에서 빛나는 상서로운 때를 상징한다. 2014년은 더욱 드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강대국들의 패권 야욕을 말굽 아래 떨쳐버리고 자유통일의 험난한 길을 꿋꿋하게 질주하는 영웅적인 말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마부정제(馬不停蹄), 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 통일의 말도 발굽을 멈출 수 없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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