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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정부 주도 고속성장 목표, 지금은 내수·수출 균형발전이 과제

1967년 1월 4일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경제기획원을 찾아 장기영(오른쪽 서 있는 사람) 부총리 겸 경제 기획원 장관의 브리핑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은 정일권 총리. [중앙포토]

1961년 출범해 94년 문을 닫을 때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경제기획원(EPB) 신화가 주목받고 있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집행을 뒷받침했던 EPB의 역할과 기능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부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EPB가 걸어온 역사를 보면 그런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EPB는 기획뿐 아니라 예산 집행까지 도맡아 우리나라 경제 부처를 총괄한 개발연대의 핵심 동력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65~79년 경제발전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역할을 한 경제동향보고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147회 중 단 한 번만 빠졌을 뿐이다. EPB에서 세운 목표와 비전은 이 회의를 통해 구체화되고, 곧 실천으로 옮겨졌다.

 3개년 계획 역시 이런 틀과 형식을 닮았다. 우선 정부 주도로 계획을 입안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직접 챙기기로 한 것은 5개년 계획 때와 비슷하다. 정부 주도 경제혁신 계획에 성장률(잠재성장률 4%), 고용률(70%), 국민소득(4만 달러 지향) 같은 계량화된 목표 수치를 넣는 방식이란 점에서도 계획경제의 구성 요소를 지녔다.

 그러나 EPB 폐지 20년이 흐른 지금 경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3개년 계획은 내수·서비스업이 수출과 균형을 이루는 균형발전론이 기본 철학이다. 수출·중공업이 성장을 이끌면서 불균형 발전이라는 부작용을 낳은 개발연대와 가장 다른 점이다. 민간보다 우수했던 공무원 집단이 일사불란하게 경제를 이끌었다는 점 역시 다르다. 60~70년대 장기영·김학렬 부총리 같은 테크노크라트(과학적이고 전문적 지식을 가진 관료)들은 강력한 리더십과 재원 배분 권한을 갖고 야전사령관처럼 경제개발 현장을 진두지휘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이번에도 EPB 출신 공무원의 역할이 기대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모두 EPB 출신이다.

 그러나 과거의 신화 재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계획경제의 수명이 박정희 시대를 끝으로 막을 내려서다. EPB는 94년 재무부와 합쳐져 재정경제원으로 개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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