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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고은 시인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자락의 자택 서재에서 시를 읽어주는 고은 시인. [장진영 기자]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말임에도 아직
어미 젖 묻은 아기의 옹알이보다 짧으리라”

-단테의 『신곡』 천국편 33


이 시 한 줄은 단테의 『신곡』 천국편 33회인 마지막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는 ‘나를 흔든 시 한 줄’을 생각했을 때 내 신변에 있는 소월의 한 줄을 얼른 불러낼까도 생각했습니다. 또는 몇 십 년 전에 내가 한국어로 번역했던 고대 중국의 굴원 초사의 신들린 몇 줄을 불러낼까도 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약 5000년 전쯤의 수메르 시대 서사시 ‘길가메시’ 끄트머리에 나오는 바닷가 선술집 동네 씨두리의 몇 줄 그런 걸 또 한번 읊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지난해 절반을 살았던 이탈리아와 인연이 생각 나서 단테의 한 줄을 골라봤습니다. 그런데 18세기쯤 그때 독일의 괴테는 아예 단테를 무시했지요. 또 비슷한 연대의 프랑스 볼테르도 아주 단테를 경멸하고, 폄하하고 그랬었죠.

 또 코르시카에 태어났던 나폴레옹은 본래 이탈리아 말을 썼습니다. 그러다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말을 썼는데 그도 ‘단테의 명성은 더 이상 떨어질 수가 없다. 왜냐면 세상에는 단테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었죠.

 20세기에 오면 단테는 놀랍게도 위대한 고전으로 부활하죠. 그 한 예가 T S 엘리엇 같은 모더니즘의 좌장은 단테를 거의 종교적으로 숭앙하죠. 우리들 역시 단테를 받아들여 지구상의 위대한 시인의 하나로 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단테의 시 세계야말로 가장 현대성이 풍부한 그런 신비스로운 세계가 아닌가 그렇게 여겨지기도 하지요.

 이 시 마지막 구절을 내가 내세운 까닭은 우리들이 참 많은 말을 합니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잊지 않을, 잊을 수 없는 그런 말을 남기기도 하지만 또 수많은 쓰레기나 티끌 같은 말도 마구 내뱉고 살고 있는데요. 이런 성숙한 언어행위 자체가 사실은 젖 먹을 때 젖먹이가 젖 먹고 나서 옹알이보다 짧거나 못 미친다는 그런 지적을 이 시가 해주고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언어라는 것을 성찰하는 잠깐의 시간이 되었으면 해서 이 구절을 여러분에게 읊어봤습니다.

고은 시인


※ 중앙일보 오피니언면이 매주 월·토요일에 명사들의 시로 한 주를 열고, 한 주를 마무리합니다. 고은 시인, 이해인 수녀, 소설가 김훈 등 문단과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시를 함께 읽고 듣는 자리입니다. 한 줄의 시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게 된 가슴 뭉클한 사연도 소개됩니다. 시는 사물에 관한 깊은 공감에서 태어납니다. 한 줄의 시와 함께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근본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여하실 분은 opinionpage@joongang.co.kr, 낭송 동영상은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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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