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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불도저'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 별세

2004년 아리엘 샤론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이스라엘에선 전쟁영웅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선 ‘도살자’로 불렸던 정치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의 설계자이자 정착촌 철수 역시 이끌었던 전략가. 평생을 이스라엘 안보 지상주의에 골몰했던 우파의 거물,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11일(현지시간) 타계했다. 86세.



이스라엘선 전쟁영웅, 팔레스타인엔 도살자
중동전쟁 맹활약, 정착촌 건설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버텨온 지 8년 만이다. 오랜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위대한 전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조국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기렸다.



 반평생 군인으로 살았던 샤론은 오늘날 이스라엘 영토와 안보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2005년 한 이스라엘 뉴스 사이트의 온라인 투표 결과 이스라엘 현대사 인물 200명 중 8위에 올랐다. 현재 텔아비브 인근엔 2억5000만 달러를 들인 ‘아리엘 샤론 공원’을 조성 중이다. 그만큼 샤론이 이스라엘 정치와 대중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영국 위임통치 시절인 192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입대했다. 이스라엘 독립(48년)과 이후 중동전쟁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73년 전역해 정계에 입문했다. 7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그를 국가안보특별보좌관에 임명하면서부터 정부 요직을 도맡았다. 국방장관 시절이던 82년엔 레바논에 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베이루트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벌어진 난민촌 학살 사태는 그에게 ‘도살자’라는 악명을 붙여줬다.



 샤론의 또 다른 별명은 ‘불도저’다. 그가 밀어붙인 정책 중 아직도 중동 분쟁의 불씨가 되는 게 유대인 정착촌이다. 샤론은 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70년대부터 유대인 정착 정책을 폈다. 그러나 총리 취임(2001년) 이후 9·11 테러 등으로 변화된 국제정세를 감안해 2005년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선언했다.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가자지역을 포기하는 대신 요르단강 서안에 분리장벽을 지어 이스라엘에 유리한 국경선을 이끌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구상이 우파 리쿠드당의 반발을 사자 샤론은 당을 떠나 카디마당을 창당하는 등 자신의 구상을 밀어붙이려 했다.



 그러던 2006년 1월 샤론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이른바 ‘샤론 구상’은 추진력을 잃었다. 이후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단체 하마스에 접수돼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샤론을 이을 강력하고 현실적인 지도자가 이스라엘에 없다는 게 문제”라며 “만약 그가 건재해서 ‘샤론 구상’이 예정대로 실현됐다면 오늘날 중동 분쟁은 아주 다른 양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축하 총포를 울리며 기뻐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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