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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닌 것 같아요 … 연습 안 하면 실수하거든요”

지난해 6월 대관령 국제음악제 기자간담회. 아직 젖살이 통통한 소녀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현란한 바이올린 독주로 참석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연주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정경화 예술감독이 직접 초청한 이수빈(14·한국예술영재교육원)양이었다. ‘바이올린 여제’를 놀라게 한 문제의 영상은 2012년 베이징에서 열린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를 때의 모습이다. 노련한 성인 연주자에게 빙의라도 된 듯 스스로 빚어내는 선율에 푹 빠진 소녀의 영상은 대회 직후 유튜브에 오르자마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정경화가 극찬한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소녀는 이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5회 오이스트라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우승과 세계청소년음악콩쿠르 유럽협회(EMCY)상, 체임버 오케스트라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13일 열리는 대원음악상 수상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라 장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바이올린 신동’인 셈이다.

소녀에게 2014년은 중요한 해다. 지난 연말 말레이시아 쇼팽 페스티벌 초청에 이어 올해에는 모스크바 오이스트라흐 순회 공연, 폴란드 쇼팽 뮤직페스티벌 및 스페인 마드리갈 뮤직페스티벌 등 초청 협연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오스트리아 빈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도 초청 절차를 밟고 있다. 인천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세계를 무대로 어떤 활약을 펼쳐갈지 퍽 흥미로운 시점이다.

“모든 연주가 떨려요. 안 떨리면 사람도 아니게요. 10분 전부터 떨려 오는데, 심호흡하고 무대 올라 인사할 때 기도하면 좀 나아요. 그런 순간이 지나고 연주가 시작되면 다 잊어버려요. 끝나고 나면 아무 기억도 안 날 정도로요.”

6일 오후 성북동의 한 스튜디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세계를 놀라게 한 당찬 소녀는 간데없었다. 소녀의 관심은 오직 강아지였다. 스튜디오에 있던 강아지를 물고 빠는 소녀의 입술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뽀뽀하다 생겼다는 작은 상처까지 있었다. 연주 때 보여주는 풍부한 표정에 조숙한 ‘애어른’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아직 놀기 좋아하고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어린애’였다.

강아지와 놀고 싶다며 몸을 비비 꼬다 ‘여제’ 정경화의 극찬을 들었을 때의 감상을 묻자 표정이 살짝 상기됐다. “진~짜 좋았어요. 저희 선생님은 칭찬을 잘 안 해 주시거든요. 선생님께 들은 최고의 칭찬이 ‘응, 괜찮네’ 정도?”

소녀의 ‘선생님’은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 ‘한국 바이올린계 대모’라 불리는 김남윤(65)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2007년 초등학교 입학 직전 한예종 예비학교(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이후 7년 동안 줄곧 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왔다. “잘하는 애들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데도 굉장히 야무지고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는 게 김 교수가 말하는 수빈이의 첫인상이다.

김 교수를 만나기 전에는 연주가 그저 ‘놀이’였다. 인천의 목회자 가정에서 3녀1남의 막내로 태어나 배 속에서부터 늘 음악이 흐르는 교회에서 자란 덕에 음악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언니·오빠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아 엄마를 졸라 여섯 살 때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주 1회 15분 수업이 고작이었지만, 혼자 무섭게 진도를 앞서갔다. “언니 오빠들 하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러웠었거든요. 악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어렵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연습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갖고 놀았던 것 같아요.”

수빈이는 ‘바이올린계 대모’ 김남윤 교수에게 7년째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젠 친할머니처럼 편하단다.
스승 김남윤 “내가 꼬마랑 많이 싸웠다 … 이젠 커서 느물느물”
놀라운 재능에 주변에선 서울로 가서 제대로 가르치라 권유했지만 목회자 가정에서 음악 교육비를 감당할 엄두를 못 내 부모님은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학비가 싸면서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갖춘 한예종 예비학교를 알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오더라. 우린 정보가 없어서 무턱대고 시험을 봤는데 김 교수님이 너무 예쁘게 봐주셨다. 오히려 정보가 있었다면 용기를 못 냈을 텐데, 하늘이 준 기회였던 것 같다”는 게 어머니의 말이다.

입학 이듬해 곧바로 음악춘추 콩쿠르 1위와 서울바로크합주단 전국음악콩쿠르 전체 대상을 받자 김 교수는 연습을 강하게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엄하기로 유명한 김 교수가 ‘최고가 되라’며 부담을 주니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2학년 때 엄청 혼난 적이 있는데요, 너무 무서워서 어딜 봐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 눈을 쳐다봤더니 어디서 건방지게 눈을 똑바로 뜨냐고 하세요. 그래서 눈을 내리깔았더니 또 어디서 선생을 외면하느냐고 하시고…. 그래서 결국 막 두리번거렸던 것 같아요(웃음). 이젠 혼내셔도 절 위한 거란 걸 아니까 무섭지 않고, 친할머니 같이 좋아요.”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어린 애들은 잘할수록 선생님이 잡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올린이란 게 어려서부터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지 않으면 힘들다. 수빈이 경우 막내라 집에서 워낙 예뻐하셔서 내가 무섭게 하는 수밖에 없다. 우습지만 내가 꼬마랑 많이 싸웠다. 그런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키도 크고 살도 쪄서 애가 느물느물해졌다. 야단을 쳐도 헤벌레 웃어넘기고 가끔 엉긴다. 어떨 때는 내가 약이 오를 정도다.”

이젠 선생님의 지도라고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음악을 이해할 때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곡의 흐름에 따라 슬프거나 화난 감정을 떠올리면 몰입이 잘 된단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무조건 했어요. 그런데 메뉴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과 1대1로 조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너는 선생님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그때 이후로 제 스타일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김 교수를 못 만났다면 평범하게 자랐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가족들의 이해와 희생도 무시할 수 없다. 목회자 가정의 빠듯한 살림 탓에 피아노를 전공하려던 언니는 결국 포기해야 했다. 돈 때문에 아이들 재능 썩히는 게 안타까워 남편에게 목회를 그만두라 종용하며 가정이 흔들리던 시기도 있었지만 남편이 굳건히 중심을 잡아줬다. 수빈이를 따라다니느라 바쁜 엄마를 위해 청소·빨래 등 집안일까지 도맡으며 묵묵히 감당하는 아빠를 수빈이도 가장 사랑한다고.

“연습이 잘 안 될 땐 아빠랑 둘이 손잡고 강아지랑 바람 쐬러 나가요. 그러고 오면 다시 잘 돼요. 선생님은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라시지만 전 그렇게 하면 집중을 못 해요. 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아빠가 하라면 해요. 왜냐면 아빠가 엄마 몰래 제가 사고 싶은 걸 사준다고 하시거든요(웃음).”

지난해 6월 대관령 국제음악제 기자간담회 특별연주 모습. 수빈이의 연주에 감탄한 예술감독 정경화가 직접 초청해 화제가 됐다.
세계 굴지 영국 IMG의 러브콜 거절 … “좀 더 성숙한 뒤 고려”
13일에는 제 8회 대원음악상 시상식에서 장려상을 받는다. 국내 클래식 음악 발전에 공헌한 인물을 포상하기 위해 2006년 제정된 대원음악상의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대원문화재단은 “어린 나이에도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양이 더욱 발전해서 우리 클래식계의 또 하나의 자랑이 되라는 격려와 희망을 담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일곤 이사장도 “5년 전 수빈양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이미 잠재력을 확인했다. 감히 한국 바이올린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이라 생각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수빈이는 이번 수상이 감사하지만 콩쿠르에서 상을 받는 것과는 달리 많이 부담스럽단다. 주변에서 ‘미래의 정경화’니, ‘천재’ ‘신동’이라 보는 시선도 앞으로 실망시키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천재는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연습을 많이 하면 잘하고 부족하면 실수하거든요.”

김남윤 교수도 ‘신동’이란 말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지금 반짝하는 것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재주가 있는 학생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걸핏하면 천재·신동이라 하는데 그런 말은 함부로 안 썼으면 좋겠다. 왜냐면 앞으로가 중요한 거니까. 재주가 더 있고 흡수능력이 빠르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걸로 했으면 좋겠다.”

수빈이는 지난해 두 가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택한 것.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마당에 예술 중학교 경쟁에 뛰어들 수 없고, 일반 중학교는 음악에 집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워낙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어 속상하지만 좋아하는 발레학원에서 친구 같은 선생님을 만나고, 영재교육원 실내악 수업에서 언니·오빠들과 호흡을 맞추며 즐겁게 지낸단다.

보다 힘든 결정은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인 영국 IMG의 러브콜을 거절한 것. 메뉴인 콩쿠르 동영상에 감탄한 IMG 측에서 여러 차례 제의를 해왔지만 김 교수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섣불리 프로로 내보내고 싶진 않다. 좀 더 성숙한 뒤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 몇 년만 더 지켜봐 달라 했다. 자아가 분명하게 생겨야 하고, 프로에게 요구되는 걸 다 소화하려면 체력도 인격도 더 준비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입장이다.

수빈이도 처음엔 무척 가고 싶었지만 마음을 정리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라 장과 이작 펄만이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아빠가 선생님 의견 따라야 한다고 하시고, 가족과 헤어지는 것도 힘들어 아직은 한국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7년이나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는 수빈이는 앞으로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음악을 하는 게 꿈이란다. “이츠하크 펄먼을 가장 좋아해요. 몸에 장애가 있는데도 전혀 불편함 없이 딛고 일어선 모습이 감동을 주잖아요. 바딤 레핀도 좋아해요. 연주가 재미있고 강하고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서 볼 때마다 재밌고 즐거워요. 저도 그들처럼 감동을 주면서 재밌고 즐거운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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