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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은 비이성적이었다”

창문여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강북지역시민모임과 서울교육단체협의회 등이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 앞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 선정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교학사가 출판한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광풍(狂風)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교육현장까지 파고든 이념갈등

 진보성향의 사회단체들이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을 상대로 ‘채택 철회’ 압박에 나서면서 교학사가 낸 역사교과서를 교재로 삼으려 했던 전국 20여 개 고교가 이를 철회했다. 올해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채택한 전국 1794개 고교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서울의 디지텍고 한 곳뿐이다. 전체 고교 중 0.05%에 불과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8일 “특별조사 결과 해당 고교들이 교재 채택을 철회하는 과정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발표했다. “교육현장까지 이념논쟁의 대결구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선 교사들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에 비해 미흡한 점이 많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사실관계 오류는 물론, 필수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대운동이 건강한 비판이나 설득을 넘어 ‘폭력적인 양상’으로까지 확대됐다는 데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수·진보 성향의 교과서를 복수 채택해 ‘균형 잡힌 역사교육’ 실험을 시도했던 전주 상산고는 진보 사회단체들의 집중 공격 속에 이를 철회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앵톨레랑스(intolérance·편협주의)’를 우려한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념논쟁의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짓밟아야 승리한다고 믿는 한국사회의 특성”이라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고 역사관이나 세계관도 하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건 다수가 소수의 다양성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설득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지난 2일 철회한 경북 성주고 정진태 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친일교육을 하는 학교로 몰아붙이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흔들리니 어쩔 수 있습니까. 좌우로 갈라진 정치싸움이 교육현장에까지 파고든 셈이지요.”

 정 교장은 “8종의 역사교과서는 95% 똑같다”고 지적했다. “수능시험에도 8종 교과서의 공통부분만 출제하게 돼 있어요. 설사 교과서에 빠진 내용이 있더라도 수능시험에 대비하려면 참고서로 보충하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려다 지난 3일 취소한 양평 양서고 권진수 교장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 것은 학생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 진보단체라는 사람들이 ‘선발대’ 형식으로 항의방문을 왔더군요. ‘이건 교육의 문제고 학내의 문제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했고 바꾸더라도 우리가 할 일이지 당신들과 얘기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하고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고집하기가 어렵더군요.”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 학교들은 ‘비이성적인 외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A고교 교장은 “사회단체들의 항의는 설득이 아니라 폭력이었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압박에 굴복한 건 아니에요. 교육현장이 이념싸움의 전선이 되는 건 막자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 과정을 보면 걱정스럽습니다. 졸업생이라면서 발신번호를 숨긴 채 전화를 해놓고는 다짜고짜 욕설부터 했어요. ‘너희들이 교육자 맞냐, 친일파 놈들 아니냐’는 식이죠. 진짜 졸업생이라면 이럴 수가 없잖아요. 비슷한 전화가 반복되니까 조직적으로 항의전화를 거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어요.”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B고교 관계자는 “교과서를 검토할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말했다. 그는 “검정을 마쳤고, 수정 보완이 이뤄졌으니 논란이 된 부분들은 고쳐졌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는 검토할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12월 중순에야 최종본 교과서가 왔다. 2~3일 만에 8종의 교과서를 검토했는데 위안부 서술 같은 게 수정되지 않았다는 건 논란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겪은 상황은 유사하다. 인터넷상에서 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교조 지역지부 등 진보성향 단체들이 항의전화와 시위에 나섰다.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한 비난여론도 조성됐다.

 보수 역사학계에서는 “좌파진영 전체가 역사교과서를 이념싸움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교학사 교과서 반대운동에 참여한 단체 상당수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비롯해 각종 진보단체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교과서 채택 철회 외압 세력 있나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운동의 중심에는 2011년 출범한 ‘역사정의실천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전교조, 민족문제연구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5·18 기념재단,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등 465개 진보성향 단체가 참여했다.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에 대한 학문적 분석은 한국역사연구회 등 진보성향의 역사학회들이 맡았고, 민주당 김태년·도종환 의원 등이 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 등이 주도해 조직적 시위에 나섰던 2008년 촛불시위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등 정치권과 진보 역사학계가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사회단체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념 논쟁을 일선 교육현장까지 확전시켰고, 이 과정에서 강압적 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같은 잣대를 적용했을 때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교과서는 없다”며 “오탈자나 사실관계 오류가 없었어도 이념논쟁을 원하는 쪽은 같은 주장을 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초점이 ‘친일’에 모아지면서 독립유공자단체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항의가 이어진 것도 일선 학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전주 상산고에는 90대 광복회원들이 찾아와 “친일교육을 중단하라”고 항의했고, 대구 포산고와 경북 청송여고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항의방문을 하기도 했다. 학교 현장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우려한 일반 학부모와 재학생의 반대여론도 적지 않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사실 오류 등 부실 집필이 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교육부가 8종의 한국사 교과서에 권고한 829건의 수정·보완 사안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 관련 건은 25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일선 학교들의 평가도 박한 편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부교재로 택했던 전주 상산고 박삼옥 교장도 “교학사 교과서만으로는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시험 대비 모두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에 근무하는 역사 교사도 “교학사 교과서는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점과 교과서로서 오류가 너무 많았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국민정서를 이해했다면 위안부 서술 논란 같은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혁(保革) 교과서를 복수 채택했던 전주 상산고가 이를 철회했지만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의 특성화고교인 디지텍고가 비상교육 교과서와 함께 교학사 교과서를 조건부로 복수 채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디지텍고 곽일천 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균형 잡힌 역사교육을 하겠다던 전주 상산고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곽 교장은 “오류를 수정한다는 전제하에 부교재로 채택한 것”이라며 “학부모회의나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복수 채택 이유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국 고교의 역사교과서 선정 절차가 대부분 끝난 상황에서 교학사 교과서 반대운동 진영은 디지텍고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10일 오전에도 디지텍고 정문에서는 사회단체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하루 수백 통의 항의전화가 폭주 중이다. 곽 교장은 “교육은 애정을 갖고 바라봐야지, 정치공학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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