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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외로움과 겨루며 쓰다, 한 국문학자의 마지막 기록

아흔 즈음에

김열규 지음

휴머니스트, 256쪽

1만5000원



맑다, 그리고 곱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국문학자 김열규 선생이 팔순 넘어 쓴 에세이를 묶은 이 유고집이 그렇다. ‘나이 든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 등으로 갈래를 짓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특별한 주제의식 없이 쓴 글들이어서 허허로운가 하면 웅숭깊고, 소슬한가 하면 자못 명랑하기도 하다.



 사유와 성찰이 담겼다. 지은이는 늦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몇 안 남은 ‘까치밥’을 두고 “드넓은 허공에 등등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주홍빛 열매가 독불장군 같다”고 한다. 홀로이기에 더 당당하다면서 자신의 외로움이 그걸 닮아 있기를 바란다. 외로움과 겨루기.



 “외로움에 찌들어서 굽히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나를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피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홀로됨이 보람과 더불어 있어야 한다.… 홀로 있기가 보람된 것이 되게 마음 써야 한다.”



 이런 구절이 함께 늙어가는 이들을 위한 나이듦의 지혜를 담았다면 젊은이들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거드는 삶의 본보기도 전한다.



 “언제나 오직 일하라.” 조각가 로댕이 비서 노릇을 하던 젊은 시인 릴케에게 했다는 이 말을 두고 그는 “릴케가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는 이 말이, 내가 내게 다짐두는 말이 된지도 이미 오래다”라고 적었다.



 국문학자의 면모도 여일하다. 일찍이 시골로 간 지은이는 뒷산 앞바다를 보며 생각을 다듬곤 했다는데 산책(散策)을 ‘한산할 산’과 ‘지팡이 책’으로 읽어준다. 그러면서 문자 그대로 천천히 지팡이 짚으면서 걷듯 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나근나근 생각을 되살린다고 들려준다.



 젊은 시절 민요 ‘아리랑’ 채집을 위해 전국을 헤매던 이야기에는 ‘아들 찾는 아리랑’이 나온다. 일제에 의해 징용 갔던 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읊조리는 노래다. “내 아들 돌아오라/일본 간 내 아들 돌아오라/아리 아리랑/쓰리 쓰리랑/아라리가 났네.”



 슬몃 웃음이 나오는 사연도 담겼다. 대중가요 가사를 인용하는 대목들이 그렇고 ‘책 먹기’ 란 표현이 그렇다. 동화며 소설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의 눈을 피해 겨울밤 몰래 읽다가 잠이 들어 아침이면 책갈피가 눅눅해지도록 침을 흘린 일을 그렇게 그렸다.



 지은이는 노년이 여생이 아니라 했다. 교향곡에서 한 악장의 끝을 장식하는 ‘코다(coda)’처럼, 결승선을 앞두고 마지막 힘을 쏟는 육상선수처럼, 해돋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장려함을 선사하는 저녁노을처럼 여운과 여광(餘光)을 남기려 스스로 다잡았다. 그러기에 지은이를 따르고 흠모하던 이들에게는 “아름답고 곱게 남겨진 뒤끝”으로 기억될 책이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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